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는 정작 행복하지 않은 사회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핍의 대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행위를 하는데 누군가 ‘왜?’라고 물을 때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 마음 가는 대로 나름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일 테니까. ‘학교를 왜 그만두었니?’ ‘그냥,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 ‘아니, 그 좋은 대기업을 왜 나왔어?’ ‘그냥,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이처럼 누군가가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왜?라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 구질구질하게 일일이 답을 하기도 귀찮을 때 ‘그냥’이라는 말은 참 적절한 것 같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리겠지만 이내 잦아들 것이다. 그들도 곧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러 가야 하니까. 그러니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관심을 가져보자. 어쩌면 그곳에 나의 억눌렸던 욕망이 조용히 노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에는 타인에 대해 관심은 갖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각자가 다른 인생이다. 누군가의 간섭을 받는 것은 정말 성가신 일이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사랑이란 이름의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 무관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요즘 말로 겉바속촉(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이 적당할 것 같다.
새로 부임한 기획팀장이 인사를 왔다. 예전에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일부러 새해 인사 겸 찾아 준 것이다. 고마웠다. 회사에 현안이 많다는 그의 말에 내가 생각하는 우리 회사의 과제와 문제점을 언급해 주었다. 기획이라는 주요 보직에 적임자가 배치된 것 같았고 비록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럭저럭 잘 해낼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지금의 업무가 일 년을 남긴 나에게는 최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의 현안들은 있지만 영업처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상황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도 아니다. 대부분의 회의는 나의 상사가 참석하고 나는 내부 업무만 챙기면 되는데 이것도 체계를 잡아두니 직원들이 알아서 잘 돌리고 있다. ‘중요하고 높으신 분들은 더 많은 일을 하십시오. 저는 제게 주어진 딱 이 정도의 일만 하겠습니다’며 속으로 웃는 마음도 없지 않다. 연공서열 문화가 강한 직장 분위기라 직급이 높다고 연봉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리 보임을 실감하고 있다. 법륜 스님이 ‘지위는 자신의 능력보다 한 단계 아래 머물면 많은 여유가 생길 것’이라 하셨는데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아는 게 병이라고 새해 업무 보고회에 참석하여 여러 부서들의 상황을 듣다 보니 회사가 당면한 현실과 나아갈 방향이 염려는 되지만 그건 경영진들의 몫이고 나는 주어진 일이나 하면 된다. 인생사 새옹지마를 떠올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