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1월 16일 (금요일)
새벽 4시,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기상을 감지한 AI “아리”는 조명을 편안한 조명으로 밝혀주었다. 예전에는 온 오프만으로 조명을 조정했으나 지금은 밤새 내 몸의 컨디션을 체크한 데이터를 근거로 조명의 밝기가 자동으로 조절되고 있다. “아침 음악”이라고 하자 잔잔하지만 가벼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조용히 타이핑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작가들의 창작의욕 같다. 이것도 음성인식 기능이 날로 발전하여 말로 해도 다 받아 적지만 글자를 찍어가는 손맛을 잊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아 키보드는 여전히 유효한 편이다. 아,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일일이 문장을 구성하기가 귀찮을 때면 ‘문장 자동 구성’ 기능을 작동시키면 몇 가지 단어만 언급해도 가능한 여러 문장을 AI가 만들어 주긴 한다. 이를테면 오늘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위해 ‘경제분야 칼럼, 금리 상승, 수출입 동향, 미국 경기, 소비자 물가’를 언급하면 AI는 내가 경제에 관한 칼럼을 작성하려 하고 금리와 수출입의 상관관계를 감안한 문장과 미국 경기 상황이 국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를 언급한 내용으로 문장 작성을 대행해 주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이건 AI가 작성한 거지 그게 어디 작가의 글이냐는 말도 있다. 사실 경제나 사회 현상에 대한 논리적 칼럼일수록 이런 비난을 더 받고 있는데 어느 정도 상관관계에 정답이 나와 있는 글의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이나 수필처럼 순수 창작을 하는 이들이 진정한 작가로 인정을 받는다지만 이들도 AI의 문장 자동 구성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침 6시, 뒷산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허공에다 “아리야, 아침 산행”이라고 말하니 “지금 바깥 기온이 영하 5도입니다. 장갑과 목도리는 소파에 있고, 스웨트는 옷걸이에 파카는 첫 번째 옷장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인공지능이 각각의 옷이나 장갑 등을 사물 인식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처럼 외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옷을 찾아 헤매는 일은 없어졌지만 아무 데나 벗어 놔도 알아서 정리해주는 기능이 아쉽긴 하다.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아파트 동 사이를 걸어가니 가로등이 자동으로 켜졌다가 내가 지나가면 꺼지기를 반복한다. 어딜 가나 센서가 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늘 감시받는 기분도 들어 무조건 유쾌한 상황만은 아니다. 천천히 산에 오른다. 나처럼 아침 산행을 하는 이들이 가끔 지나치기도 하지만 살갑게 인사할 정도는 아니다. 봉수대에 올라 서울의 전경을 한 번 훑어보고는 똑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남기고 올라온 길로 천천히 다시 내려왔다. 땀에 젖은 몸을 샤워로 씻어준다. 물의 온도는 자동으로 조절되어 이전처럼 온수 냉수를 왔다 갔다 할 이유는 없어졌다. 천천히 머리를 말리고는 택배함을 열었다. 아침식사가 배달되어 있었다. 보통 알아서 배달되지만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전날 따로 주문만 넣으면 된다. 식사를 마치고는 남은 음식물과 그릇을 통째로 음식물 처리기에 넣어버린다. 안에서 자동 분리되어 처리되는 방식이다.
아침 8시, 아리가 회사를 갈 거냐고 묻는다. 지난주는 나가기 싫어 그냥 재택근무를 했지만 오늘은 나가볼까 싶다. “회사 갈게”라고 하자 이번에는 어디에 있는 어떤 옷을 입는 게 좋겠다고 코디를 해 준다. 취향을 알고 있는터라 대부분 따르지만 한 번씩 다른 옷을 입기도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쩐지 AI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데 어깃장을 놓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늘 후회하긴 하지만. 아리가 차를 가져갈 건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건지 다시 물었다. 요즘은 차를 가지고 나가면 비용이 더 드는 구조다. 탄소중립 정책이니 뭐니 해서 근거리일수록 자가용을 가지고 출근하면 더 높은 간접세를 물리고 있다. 자동 주행이라 운전 부담은 없지만 비용 부담이 싫긴 하다.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니 몇 분 후에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겠다고 한다. 어차피 출근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아무 때나 나가도 상관없긴 하다.
아침 9시,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몇 층에서 일할까 하다 10층으로 간다. 부서별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무 자리에 앉아서 그날 일을 하면 된다. 메타버스상에 접속하여 나의 출근 사실을 알리고 일을 하고 있자니 심 차장으로부터 함께 점심하겠냐고 문자가 왔다. 12시는 붐빌 테니 1시쯤 보자고 했다.
오후 1시,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예전에는 복무규정이니 뭐니 해서 12시부터 점심시간이 정해졌었지만 지금은 아무 때나 나가도 되고 심지어 나갔다 바로 퇴근해도 상관이 없다. 근무시간으로 평가받지 않고 자신이 이룩한 일의 성과가 데이터로 남는 방식이니 근무시간은 별 의미가 없어졌다. 한두 시간 노닥거리다 다시 사무실로 와서 남은 일을 마저 했다.
오후 6시, 퇴근할까 한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어 굳이 이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지만 오래된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생활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니까. 내일은 어디 조용한 카페에나 가서 출근할까 싶다. 어차피 내 아바타로 출근하는 메타버스 사무실이니 내가 머무는 장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