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아내와 딸아이의 갈등이 좀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면서까지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3개월 남았는데 아내의 입장에선 좀 더 세게 밀어붙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가뜩이나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엄마의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럴 경우 어느 한쪽 편을 들며 끼어들었겠지만 요즘은 그냥 지켜보는 편이다. 그래 봐야 어느 쪽에서든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편안해야 할 주말 분위기가 영 냉랭했었다.
내가 법륜 스님에게 감사드리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관점을 정립시켜 준 면도 있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신경 끄라는 말씀이다. 질문자들이 스님에게 하는 질문에는 자녀에 관한 것도 제법 있다. 이럴 때 스님의 말씀은 한결같다. 세 살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우도록 하고 어릴 때는 먹여주고 입혀주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되 공부 안 하는 걸로 질책할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 이제 성인으로 대하여 신경을 끄라는 말씀이었다. 예전에 어느 법사님께 이런 질문을 드린 적도 있다. 은퇴시기를 보면 아직 아이들이 독립을 하긴 어렵고 취업이나 결혼 등이 남아 걱정된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그 답변이 너무도 명쾌하셨다. “할 수 없는 걸 어떡하겠어요”라는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었다. 그렇긴 하다. 할 수 없는 걸로 내가 걱정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걱정을 해서 걱정이 해결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도 있듯이 걱정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는 법이다.
아내와는 달리 나는 아이들에 대해 가지는 관점이 명확한 편이다. 나는 부모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먹이고 입혀 키워냈고 대학까지 교육받을 기회를 주었다. 공부를 하고 않고는 아이들의 문제였지 내 문제는 아니었다. 주변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를 유학 보낸 동료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건 내 형편에 무리한 일이라 아예 생각을 않았다. 그렇게 스무 살이 넘어섰다. 냉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20대 중반의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것은 어른인 남의 인생에 내가 개입하는 것이고 그런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조언을 요청하면 나의 경험을 들려주되 그것도 아니면 잘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래야 이번에 큰 횡령사건을 저지른 오스템 임플란트 직원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는다. 나중에 면회를 갈 망정 범죄를 저지른 아들은 당연히 신고했어야 한다. 나의 자식이지만 남의 자식 대하듯 하는 게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스무 살 이전까지 이고 그 나이를 넘어서면 부모는 스폰서 역할로 바뀐다. 스폰서는 여건이 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못하는 거다. 가끔 나의 이런 관점이 아내와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나마 일요일이 지날 무렵 모녀지간의 갈등이 풀려서 다행이지만 여자들 사이에 끼인 남편이나 아빠는 늘 눈치를 보며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