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영업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 있다. 현장의 사업단장 시절 스텝으로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인사 발령으로 다시 영업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며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어떤 때는 너무 영업 멘트를 날려 웃으며 제지시키기도 했지만 일처리만은 깔끔하게 잘 해내는 직원이었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한 두 가지 단점은 있게 마련인지 술자리에서 가끔 실수를 하고 과음이라도 하게 되면 다음날 출근을 못하곤 했다. 그래도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라 계속 데리고 있었지만 몇 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태가 반복되자 나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해 인사 조치를 시킨 경우였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발령 내어 그런 사건은 있었지만 둘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 : 축하한다. 본인이 원했던 자리였지?
*그 : 네, 사실은 지점장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지역 사무소 팀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 : 그래도 본인에겐 그게 더 나은 것 같다.
*그 : 점점 나이도 들어 어린 직원들에게 부담도 주는 것 같고, 저 역시 제가 할 만한 일을 생각하면 본사보다는 영업 현장이 나을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어느 정도 가정사도 아는 사이라 가족의 안부를 묻고 환담이 이어지는데 자연스레 나의 은퇴 후 계획을 물었다. 당연히 다시 일을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책 읽고 글 쓰며 여행이나 다닐 생각이라 하니 이상하다는 듯 경제 활동은 않느냐고 묻는다. 그냥 웃으며 그동안 많이 벌었으니 이제 돈 버는 일은 좀 쉬어야지라고 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개 이렇게 대화가 이어진다. 일이라 하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지 그 밖의 활동은 일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나 : 본인도 은퇴가 얼만 안 남았다면서 특별한 계획은 있어?
*그 : 늦둥이를 생각하면 저는 70세까지는 활동을 하며 돈을 벌 생각입니다.
*나 :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 : 개인택시를 하려고요. 고속버스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의 은퇴 무렵 좀 무리해서 개인택시를 내어 드렸는데 80세가 되셨는데도 여전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는 은퇴하면 아버지의 택시를 물려받을 생각입니다.
택시운전을 하겠다는 그의 말이 신선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신체적 활동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운전이라는 직업은 꽤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며 농반진반 영화 기생충의 대사를 건넸다.
올해 부서에서 채용하는 순회 검사역에는 60세가 넘은 퇴직 동인들이 지원한 게 더러 보인다. 그중에는 예전에 나의 상사로 근무했던 팀장도 계시는데 솔직한 내 마음은 ‘후배 입장 곤란하게 왜 이러실까, 좀 자제하시지’ 싶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에게 한참 멀게만 느껴지는 그 나이대가 실제로는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그분들의 신체 나이와 마음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은퇴 후 뭐 할 거냐는 질문에 글 쓰고 책 읽고 여행 다닐 생각이라면 ‘그거 말고 돈벌이로 뭐 할 거냐’ 아니면 ‘돈 많이 벌어 놓았나 보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요즘은 둘 다 대꾸하기도 귀찮아 ‘글쎄, 뭔가는 하고 있겠지’로 대답을 바꾸기로 했다. 돈벌이는 직장생활 말고는 했던 적이 없고, 투자 능력도 그리 탁월한 것 같지 않으니 벌이를 위해 새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그냥 가진 범위에서 살자는 마음이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에 그게 벌이도 되면 다행이라는 가벼운 마음을 내어 본다. 은퇴 이후는 철학적 사유나 무언가를 배우기에 좋은 시기 같다. 은퇴 후 뭐 할 거냐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싶다. ’ 당신은 은퇴 후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세요?’ 앞으로 30년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남기는 것도 은퇴 후 해 볼만한 큰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