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어, 그거 말 되네

by 장용범

저녁을 먹다가 딸아이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고 하기에 뭔가 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들었고 했던 말인데 아닌 것 같아서다. 다시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자주 들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바로 고쳐주니 박명수 어록에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가 맞다고 했다. 별의별 어록이 다 있다 싶어 찾아보니 예능에서 그가 했던 비슷한 말들이 있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외에도 ‘’ 포기하면 편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등 그가 툭툭 던졌던 말에 시청자들이 잠시 웃었지만 나중에 그거 말 되네로 받아들여져 ‘박명수 어록’이 되었나 보다. 그의 어록이란 걸 보니 기존 말들을 약간 비튼 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요즘 세태에는 적당해 보인다.


*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을 이렇듯 거꾸로 보니 전혀 다른 뜻이 되었다. 그렇지, 세상에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즐길 수도 없는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즐길 수 없으면 피하긴 하되 그래도 정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순서상 맞을 것 같다.


** 포기하면 편하다, 고생 끝에 골병 난다,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나는 ‘포기해선 안돼’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세대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소리’까지 들으며 하기 싫지만 억지로 했던 일도 많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 내려면 참고 견디어 마침내 인간승리를 거두어야 기승전결이 완성된다고 여기는 면도 있다. 아마도 나의 윗세대는 더 했을 것이다. 그런데 ‘포기하면 편하다’, ‘고생 끝에 골병 난다’는 말은 어쩐지 그렇게 기를 써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에게 과연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 하고 돌아보게 한다. 우리 사회가 대안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포기하면 안 돼’라는 말이 맞았다면 지금은 안 되는 걸 억지로 해서 골병들지 말고 다른 길도 찾아보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토끼가 뛰어가는데 거북이가 기를 쓰고 쫓아가기보다는 무대를 바다로 바꾸어 거북이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곳에서 기량을 펼칠 수도 있는 법이다.


이외에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하라’,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는 말에도 공감이 된다. 말이나 글은 개인의 보이지 않는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도구이다. 박명수 어록을 보니 그의 살아가는 방식이 엿보인다. 무작정 남들을 쫓아가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거기서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들에 ‘과연 그럴까’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가능성을 가진다. 기존의 말을 약간씩 비튼 박명수 어록을 보며 그동안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 중에 뒤집어서 볼 만한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 출근해서 일한다 : 일하는 게 목적이라면 꼭 출근할 필요가 있을까?

* 9 TO 6 : 시간을 채우는 게 중요할까, 일의 결과물이 중요할까?

* 도심 주유소 : 도심이라 기름값이 더 비싼데 외곽보다 주유차량이 더 많을 테니 싸야 하지 않을까?

* CEO와 직원 : 회사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더 오래 근무할 직원들이 더 클 것 같은데 왜 CEO가 회사를 더 걱정한다고 여길까?

* 학교 : 인강이나 학원에서 교과를 더 잘 가르친다면 학교나 교사의 목적은 무얼까? 그리고 학교는 교사나 학생 중 누구에게 더 필요할까? 더 필요한 사람이 더 지키려는 사람임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학생보다는 교사에게 더 필요한 곳 같다

* 공부와 시험 : 검색하면 나오는 것을 외울 필요가 있을까? 공부의 목적이 알기 위함이라면 시험장에서 검색을 허용하고 서로 묻고 의논하게 하면서 시험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게 목적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부가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새로운 공부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 독서 : 역시 검색하면 나오는데 독서는 왜 해야 할까? 어쩌면 받아들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 것으로 재구성하여 쏟아내는 게 목적일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에 이렇듯 의문을 가져보는 것은 재미난 여정이다. 누가 아는가? 거기서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솟아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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