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따라 내가 조금씩 변해가다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알 수 없는 내일은 오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있는 오늘만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날이다. 누구나 현재를 살아간다 여기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마음은 종종 과거로 가서 후회나 추억에 잠기고 미래의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 밝은 희망도 보지만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갈 때가 더 많다. 50년 넘는 세월을 이 땅에 살아오면서 날리는 이름들을 여럿 보았다. 박정희, 김일성,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정일, 노무현이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구자경, 박태준, 이건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아 생전 많은 것을 누리다가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고려 사람 길재는 망한 고려의 도읍지를 말 한 필을 타고 돌아 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학생 : 선생님, ‘어즈버’가 뭐에요?
선생 : 아
학생 : 네?
선생 : 이놈아 ‘아~’라는 감탄사 라고.
학생 : 어즈버
그런가 하면 황진이는 조선 최고의 미인이었다.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 만큼 미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와 재능을 연모하는 마음이 컸나 보다. 하지만 그녀는 한창 절정기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을까? 그 좋다는 평안감사로 발령받아 가던 임제는 그녀의 무덤을 일부러 찾아 술을 한 잔 올렸다. 무덤을 내려다 보니 인생의 허망함도 느꼈겠지. 그래서 한 수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노라’. 시조를 너무 잘 지은 탓일까. 어명을 받고 부임지로 가던 평안감사가 관복을 입고 기생 무덤이나 찾았다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짤리고 만다. 임명직임을 감안하면 오늘날 장관 발령 받자마자 강남 룸살롱 간 것과 같으려나 싶다.
세상에 나서 이름을 알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죽하면 부모에게 하는 가장 큰 효도가 입신양명이라 했을까. 하지만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는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은 게 경치 좋은 곳의 바위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거였나 보다. 그런데 이름을 새기는 것도 중국은 스케일이 달랐다. 북경 근처 용경협이라는 큰 호수에 가니 산에다 크게 ‘강택민’이라고 새긴 걸 보았다. ‘강택민? 누구였더라? 아, 등소평 이후의 중국 주석?’ 맞다. 그 사람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4단계에 해당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심하게 머문 사람이겠지. 보통 사람들이야 그리 할래야 할 수도 없으니 오며가며 산에 새긴 남의 이름이나 보고 말겠지만. 이름으로 아쉬우면 동상을 만들기도 한다. 북한의 알아주는 기술 중 하나가 독재자들의 큰 동상 제작이라는 말도 있다.
창원에서 살던 때의 좀 오래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그날은 가족과 함께 시내 횟집을 갔었다. 좀 한가할 때 가서 그런지 손님은 없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한 가족이 들어왔다.
아내 : 아무리 봐도 강동원 같애.
나 : 강동원이 누구야?
아내 : 왜, 드라마 OOO에 나오는..
나 : 몰라.
아내 : 그래, 강동원 맞아. 그런데 아무도 몰라보네.
나 : 그래? 그건 연예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인사나 하고 와야 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 테이블로 다가가서는)
나 : 혹시 강동원 씨 아닙니까?
탤런트인 아들을 알아봐 주는 나를 그 자리에 있던 부모님이 더 반가워하셨다. 지금도 아내는 그 때 사인이나 받아둘 걸 하고 아쉬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