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했다. 어제의 느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한 주 정도 이른 설 명절을 보내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의 착륙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땅에 닿았다는 느낌마저 안 들었다. 기장을 보았다면 멋진 착륙이었다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동생에게 도착 사실을 알리고는 부모님 집에서 보기로 했는데 장어를 사 갈 생각으로 조카들이 오느냐 물으니 아무도 없다며 제수씨도 제주도에 있어 혼자 온다고 했다. 공항에서 본가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민물장어를 구입했다. Kg당 4만 원인데 아내가 10만 원어치를 주되 3Kg 같은 10만 원으로 달라고 하니 ‘네 그러죠’ 하는데 아주 깔끔하게 3Kg를 담아 주었다. 시장 흥정이 이리도 쉬운 거였나 싶을 정도였다. 짐이 많아 택시를 잡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 행인들이 자동차의 흐름을 끊어 놓았다. 그런데 그 앞에 빈 택시 하나가 대기하고 있어 반가웠다. 이 역시 깔끔했다. 본가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니 환하게 반기는 두 분이 계셔서 마음마저 밝아진다. 늘 느끼지만 정갈한 어머님의 성품 탓에 잘 정리된 가재도구들을 보는 마음이 가벼웠다. 이번에 달라진 것은 커다란 안마의자가 있다는 정도였다. 연세 있으신 두 분의 건강한 모습을 뵈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님의 말씀처럼 내 나잇대에 친가와 처가 부모님 모두 계신 경우는 드문데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동생이 도착했다. 조만간 교장 선생이 될 몸이라 더 어젓해진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막내라는 인식이 강해 늘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왔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결례다 싶어 지난번 내려왔을 때 호칭 정리를 좀 하자고 했다. 아무리 형 동생이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것 같으니 형인 내가 어떻게 불러주면 좋겠냐고 하니 편할 대로 부르시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의견을 낸 게 선생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선생은 존칭이지만 그보다는 직업이 선생님이니 성을 붙여 ‘장 선생’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편하게 이름을 부를 때와는 달리 동생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처음에는 ‘아우님’이라는 호칭도 생각했으나 이건 조선시대도 아니고 너무 거리감이 느껴져 관뒀다. 저녁에 제수씨 마중하러 공항에 건다기에 술은 돌리지 않았다. 이것도 깔끔했다. 만날 때마다 둘의 마음이 너무 잘 맞아 술이 제법 도는 편인데 어제는 그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깔끔하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다. 단순 명쾌하다는 느낌도 들고 미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니 쉽게 될 것 같지만 사실 깔끔함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든다. 자연계는 열역학 제2법칙이 적용된다. 일명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주변 환경이든 인간관계든 그냥 내버려 두면 먼지가 쌓이고 어수선해지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니 깔끔함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개입해야 한다. 수시로 청소를 하고 물건을 쓰면 언제나 제자리에 두는 수고도 해야 한다. 일단 눈앞의 물건들이 질서가 잡히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하는 일에도 순서가 잡히고 명쾌해진다. 그러니 어떤 일로 머리가 복잡하다 여겨지면 책상 정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게 좋다. 영화 ‘리미트리스’를 수차례 보았는데 알약 하나로 뇌의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어 많은 성과를 거둔다는 내용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의 룸펜 수준의 주인공이 알약을 먹고 머리가 맑아지자 제일 먼저 했던 게 지저분한 자신의 방 청소였다. 깔끔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이 엔트로피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질서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게 살아있다는 증거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