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 짧은 여정, 긴 여운

by 장용범

이른 설을 보내려 내려간 귀성길이었다. 본가 부모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처갓집으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장모님이 안 계신 처갓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흔이 넘으신 장인어른의 메마른 기침소리만 가끔 들릴 뿐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있고 없고가 이리도 다르구나 싶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와 처형은 화기애애한 대화 꽃을 피웠지만 정작 나와 장인어른은 거실 TV에 시선을 둔 채 어색함을 이어갔다. 이튿날 아침, 장모님이 계신 요양병원을 가기 위해 공유 자동차 ‘쏘카’를 빌렸다. 가끔 이용하는 자동차 이용 방식이다. 장거리는 기차나 비행기로 이동하고 그 지역에서 오갈 때는 공유 자동차로 이동하는 방법을 쓴다. 점심 즈음 도착한 요양병원에서 뵌 장모님은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셨다. 식사도 잘하시고 주변 노인들 사이에도 인기가 있으시다며 병원 측에서는 안심의 말을 전한다. 10분 남짓의 면회시간이지만 코로나 방역을 감안하여 면회장소에는 투명 가림막이 놓여 있었다. 함께 모시고 간 장인어른은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 온 아내를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운 듯 투명 가림막에 자꾸 손을 대신다.


돌아오는 길, 창원에 근무할 때 자주 들르던 ‘언양각’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석쇠불고기와 국밥을 잘하는 곳이다. 이곳은 내가 결혼할 즈음 분위기 좋았던 지점 식구들이 신부 소개하는 댕기풀이를 하라기에 모였던 추억의 장소기도 하다. 석쇠불고기, 소국밥을 팔아서인지 사장님의 얼굴이 소를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곳인데 예나 지금이나 카운터를 꿋꿋이 지키고 계신 사장님이 반가웠다. 달라진 것은 머리가 하얗게 새셨다는 것과 장사가 여전히 잘 되시는지 주차장이 많이 넓어졌다는 정도였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다가 사장님께 한 마디 덕담을 건넸다.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예전에 자주 들르던 곳이어서 꼭 한 번 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너무도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면서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하신다.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 그런 아내를 만나는 자리에서 투명 가림막에 자꾸 손을 내밀던 장인어른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석쇠불고기와 국밥을 팔고 계신 언양각 사장님을 보니 ‘산다는 게 뭘까’라는 화두가 절로 올라온다. 늦은 오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몸을 실은 비행기는 흐린 하늘 위를 날아간다. 아래로는 구름이 양털처럼 깔려있고 위로는 태양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뉘엿거리며 넘어가고 있다.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서서히 하강하는데 어두워진 대지위로 점점이 불빛들이 흘러간다. 그렇지, 오늘은 평일이고 저건 퇴근길 차량들이겠지. 일상은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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