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정의(定義) 내리며 놀기

by 장용범

혼자 노는 법 중에 당연해 보이는 것들의 정의(定義)를 찾아보고는 내 나름대로 다시 정의하는 것이 있다. 정의(定義)란 것이 ‘무엇은 무엇이다’처럼 어떤 일이나 대상을 잘 알 수 있도록 분명하게 정하여 밝히는 것이고 그것을 모아 놓은 것이 ‘사전’이다. 보통 사전은 개념적 정의를 담고 있어 ‘무엇은 무엇’이라고 기준이 되고 있지만 이것은 한 끼 칼로리로 충분하다고 매일 건강식만 먹는 것과 다름 아니다. 칼로리만 채운다고 만족한 식사는 아니듯이 대상을 정의할 때는 ‘조작적 정의’도 필요하다. 오히려 그 개념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니 조작적 정의 없는 개념적 정의는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소설가 이외수는 그런 것이 재미있었나 보다. 그의 감성사전’에는 기발한 정의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이러하다.

*영혼 : 우주 무임승차권

*평화 : 전쟁 발발의 합리적 근거

*허수아비 :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봇


말장난이랄 수도 있지만 당연한 것을 달리 보고 그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고급진 두뇌 게임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인생은 점 잇기’라는 식으로 인생에 대한 그의 정의를 지었다. 반면 이외수는 인생의 정의를 ‘인간답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비포장도로’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사전에 나와 있는 딱딱한 정의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개개인의 정의에 마음이 움직인다. 인생을 점 잇기로 보면 눈앞에 인생이란 그림이 그려진다. 1번부터 100번까지 순차적으로 연결해야 전체 모습이 보이는데 처음 10번의 점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작 10번의 점을 지날 때는 알 수 없지만 점을 더 많이 이어갈수록 10번 점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된다. 점 하나의 의미는 전체 그림이 그려져야 알 수 있다는 것을 스티브 잡스는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보험 수리를 공부하는 딸아이가 ‘오일러가 사랑한 수 e’라는 책을 찾고 있기에 학창 시절 수학 문제를 풀 때 자주 보았던 e의 개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를 선택해 수학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는데 그때 지겹게 보던 것이 무한대를 의미하는 e였다. 수학에는 무슨 정의가 그리도 많은지 당시엔 골머리를 앓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당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문제 풀이에만 급급했던 수학을 다시 공부해 볼까 싶기도 하다. 은퇴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수학 공부 모임’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도 같다. 연휴 중 시간도 많겠다 내친김에 몇 가지 수학적 정의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가 보았다.


‘곡선이란 무엇인가?’라고 찾으니 ‘연속적인 점들의 집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점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으로 휘지 않고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재미있다. 내가 정의한다면 곡선은 ‘꾸불꾸불한 선’이고 직선은 ‘똑바른 선’이라고 할 것 같은데 당연한 것을 딴소리 못하게 하려다 보니 그리되었나 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장 기본인 점(點)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점의 정의는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서 위치만 있고 넓이도 길이도 크기도 없는 것’이라 한다. 나라면 그냥 ‘시작과 끝이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것 같다. 언젠가 대화 중에 ‘여자의 얼굴’에 대해 내린 정의를 듣고는 웃었던 적이 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을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이는 곳’이라고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