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고향을 다녀온 덕에 설 명절 연휴를 집에서 보내고 있다. 눈이 크게 내린 귀경길의 정체도 남의 일이고 오롯이 가족 휴가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크게 집 밖을 벗어나지 않고 지내다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동네 슈퍼를 간다는 명목으로 산책을 겸하고 있다. 평온한 일상이다. 뵙고는 왔지만 이번 설 명절은 유난히 부모님 생각이 더 나는 것 같다. 서울의 큰 아들은 일찍 다녀갔지만 설 당일에는 작은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졌을 것이다. 잠시 북적이던 집이 조용해졌을 때 팔순의 노부부가 느낄 허전함이 커실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분이 함께 지내시니 서로 의지가 되시겠다는 정도이다. 주변을 보면 연세가 팔순이 넘으면 한 분은 일찍 돌아가셨거나 병원에 계셔서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대개 노인 독립 가구를 형성해 사는 것 같다. 젊을 적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나이 앞에는 장사 없다고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아기 적 모습이 담긴 앨범을 찾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보다도 부모님에게 더 눈이 갔다. 손자를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서다. 저 시기는 내가 30대 초반으로 부모님의 연세를 역산해 보니 얼추 지금의 나와 비슷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진 속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이 당연했지만 나에게는 그게 낯설었다. 사진을 다시 보니 아버지는 정수리의 머리숱이 조금씩 빠지는 중이었고 그때가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는 하셨지만 여전히 활동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본가에 계신 팔순 노인이 저분이었다는 게 잘 매치가 안 된다. 더구나 사진에 담긴 모습은 지금의 나와 너무도 닮았지 않은가. 저 당시 내가 부모님에 대해 가졌던 기억은 인생에 대한 지혜와 깊이가 있고 모든 게 올바른 결정이려니 하는 막연한 신뢰 같은 게 있었다. 그 기억에 비추어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러한가 묻게 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좋아한다. 머무는 곳 어디서나 주인이 되어 행하라는 뜻이다. 수처작주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늘 함께 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경우는 드물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고 장소로는 이곳과 저곳을 오가고 있다. 몸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속성이 있다. 젊을 적엔 몸도 마음의 말을 잘 듣지만 기계도 오래 쓰면 삐걱이듯이 몸도 세월 따라 하나 둘 고장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노인이 되면 마음이 아무리 뭘 하자 재촉해도 몸이 빨리 움직이질 않는다. 그 정도가 되면 이제는 마음이 몸의 속도에 맞춰줘야 한다.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날아가지만 몸은 그러지 못해서다. 오래된 사진 속의 아버님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팔순 노인인 지금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본다. 어느 시기든 내가 그 시기의 주인 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나름 잘 살고 있는 삶일 것이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