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 러시아 아방가르드

by 장용범

꼭 한 번 가야지 했던 미술 전시회가 있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이라는 전시회이다. 전시장은 집이나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나 일부러 시간 내어 가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을 맞아 여유도 있고 해서 전시장을 찾았다. 평소 유료 전시회는 잘 찾지 않는 내가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에 관심이 갔던 것은 순전히 작년에 들었던 ‘러시아 인문강좌’때문이었다. 커리큘럼 중에 러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관심을 끌었던 부분이 오랜 기간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내던 화가들이 갑자기 러시아 혁명이라는 큰 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표현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사회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나 혁명이라는 큰 사회적 변화는 민중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지금껏 누리던 일상과는 다른 삶을 강요했을 것이다. 특히나 예술가들은 이런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그 시대는 혁명은 일어났지만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의 내전상태로 접어든 시기였다. 혁명에 반대하던 귀족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모아 저항하였고 황제나 왕이 이끄는 이웃 나라들은 혁명이 자신들의 나라로 번질 것을 우려해 이들을 지원하였다. 혁명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대도시에서 일어났고 땅이 워낙 넓어 변방은 백군이 장악하던 시기였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겨우 붉은 군대(赤軍)가 승리는 하였지만 이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러시아는 다시 전쟁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어떤 그림들을 그렸을지 궁금했다.


전시회를 둘러본 느낌은 한 마디로 오늘날 현대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네모, 세모 등의 각종 도형들을 화폭에 배치한 구상주의나 추상화의 흐름도 있고 풍경의 그림들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기보다는 다양한 형식으로 비틀어 표현한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정물이나 풍경을 그리던 이전의 방식에서 그림에도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사물을 묘사하는 부담에서 예술가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말레비치나 아방가르드 작가 선언문에 나오는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처럼 분명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그림들을 시도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몇 년 전 인사동에서 열린 ‘러시아 현대미술전’에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느낀 점은 현대 미술인데도 그림들의 대부분은 풍경을 그린 게 많아 러시아 그림들은 크게 다양성이 없나 보다 했었는데 어제의 전시회를 보니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적어도 그림은 저 시대가 더 역동적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랬을까? 이 역시 시대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내전이 끝난 후 스탈린이 집권하게 되고 2차 대전을 맞아 죽을 고생을 한 끝에 안정적인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구 소련)을 수립하게 된다. 그 후 오랜 기간 체제 선전용 그림이나 그리다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다시 표현의 자유가 생긴 배경 때문은 아닐까 한다. 푸틴이라는 인물 때문에 그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혁명과 전쟁이라는 격동의 기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시도는 분명 지금의 러시아 그림들보다는 좀 더 역동적이라는 게 어제 전시회를 본 내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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