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계의 아이돌이라는 김영민 교수라는 분이 있다. 그의 글을 보면 익숙하게 접했던 칼럼 형식과는 달리 유머 섞인 날 선 비판의식을 느끼게 된다. 최근 그의 칼럼이 마음에 들어 필사까지 했던 것이 ‘인생의 디저트를 즐기는 법, 좋아하되 함몰되지 마라’는 글이었다. 그 역시 중국 소동파 시인의 글을 읽고서 느낀 바가 있어 칼럼으로 냈고, 나는 그것을 읽고 이렇게 쓰고 있으니 소동파와 김영민 교수, 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만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게 글의 묘미기도 하다. 그 칼럼은 무언가를 제대로 좋아하는 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무언가는 나에게 즐거움을 일으키고 삶의 활력을 느끼게 하는 그런 대상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것에 점점 빠져들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게 ‘집착’이다. 나만 온전히 가지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도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생겨나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괴로워진다. 이때부터는 마음의 지옥문이 열린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연인에 대한 집착이 스토킹 형태로 나타나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것을 보는데 이 또한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렇다고 인생이 즐겁지 않으면 또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청춘이 헤어짐이 두려워 연애를 시작 않거나, 돈이 아까워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건지 생각해 볼 문제다.
이에 대해 소동파는 ‘보회당기(寶繪堂記)’ 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군자는 사물에 마음을 잠시 둘 수는 있으나 사물에 마음을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사물에 마음을 잠시 두면 비록 하찮은 사물이라도 족히 즐거움이 되며, 비록 진귀한 사물도 족히 병통이 되지 아니한다. 하지만 사물에 마음을 머무르면 비록 하찮은 사물이라도 족히 병통이 되며, 비록 진귀한 사물도 족히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말은 길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좋아하되 집착할 정도로 빠져들지는 말라’는 내용이다.
고(苦)와 락(樂)은 함께 온다고 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중생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 하지는 않는다. 법륜 스님의 말씀을 빌면 생쥐가 접시 위의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할 때 붓다는 ‘케이크 안에 쥐약이 발라져 있다’는 경고까지만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먹고 안 먹고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지 먹으라 말라는 말은 않는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언젠가 수험생을 독려하는 글 중에 ‘추울 때 추위 속에 일하고, 더울 때 더위 속에 일하고 싶지 않거든 공부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글을 붓다의 표현으로 바꾸면 ‘공부 안 하면 추울 때 추위 속에서 일하고, 더울 때 더위 속에서 일한다’ 정도로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선택은 네가 해라’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괴롭고 싶지 않거든 즐거움도 버려라. 아니면 즐거움을 누리려거든 그에 따른 괴로움도 기꺼이 받아들여라가 맞는 것이지 즐거움만 누리고 그에 따른 괴로움은 어떡하든 피하겠다는 건 옳지 않다.
짧은 생을 살면서 괴롭지 않기 위해 즐거움을 버리는 것도 밋밋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또한 고(苦)와 락(樂)은 함께 온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에겐 어떤 길이 있을까. 소동파의 글처럼 ‘즐기되 빠져들지는 말아라’가 나름 답이 될 수 있겠다. 어떤 대상이건 집착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