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 백수가 행복한 세상

by 장용범

요즘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에게 목표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대기업 정규직’이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잉여의 시대이다. 머지않아 구직인구 대비 일자리가 남아돌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지금은 일자리보다 사람이 남아돈다. 경제학적으로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지고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하지만 이것도 대기업이나 고소득의 안정된 직업에는 일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고 중소기업에는 사람이 부족한 일자리의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여기에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라는 이상한 화두를 던져 주목을 끄는 사람이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님이다. 그 분의 말대로 지금 이 나라는 백수의 나라다. 취업 못한 청년 백수, 직장에서 일찍 내몰린 중년 백수, 운 좋게 직장생할의 끝까지는 갔으나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은퇴백수 그리고 살 날이 머지않은 노년 백수까지 이런저런 백수들의 숫자를 모아 보면 꽤 많은 인구비중을 차지 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어떤 형태로든 백수의 생활을 겪게 된다. 이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정당을 만들어 백수들에게 유리한 정책들을 만들어 간다고 상상해 보았다. 이 때 백수들은 어떤 주장을 하게 될까?


*백수 : 우리의 주장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에게 일자리는 필요없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 활동들은 할테니 그에 맞는 경제적 지원은 정부가 보장하라.

*정부 : 어떤 활동을 하실건데요?

*백수 : 길 가다가 휴지도 주울 것이고, 길 모르는 외국인에게 안내도 할 것이다. 고전 공부나 연극활동도 하여 나라의 문화수준도 올려 놓겠다. 우리가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제출하면 정부는 내 통장에 일정한 돈을 지급하는 거다. 나는 그 돈을 사용하여 나라의 경제가 돌아가게 하겠다.

*정부 : 일단 좀 이상하지만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뭔가요?

*백수 : 백수가 활동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인적, 물적 지원을 확대 하라.

*정부 :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것 말이죠?

*백수 : 그래, 바로 그거야. 혼자 노는 백수들도 있지만 함께 놀고 싶은 백수들도 많거든. 그러니까 그런 시설을 더욱 늘려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는 거지.

*정부 : 그건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니 낯설지는 않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놀기만 하면 일은 누가 하나요? 가뜩이나 분단되고 자원도 없는 나라인데 자동차도 만들고 반도체도 만들어 수출을 해야 먹고 살 텐데요.

*백수 :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백수들 중에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도 많으니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안 나올거다. 더구나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더냐. 그러니 우리 백수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문화활동에 전념하겠다.

*정부 :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뭔가요?

*백수 : 일하는 사람과 백수간의 소득격차를 줄여 백수는 일하는 사람 소득의 60-70%정도는 받게 하라. 대신 그 소득수준을 결정할 때 최저임금을 결정하듯 최고 임금도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축구에 있어 일반인과 손흥민의 실력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해도 월 200만원 대비 월 12억원 수준만큼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손흥민이 100미터 달리기를 600배 빠를 수도 없고, 드리블을 600배 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 않더냐. 대기업 CEO의 연봉도 그렇다. 그들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수 십억대가 넘는 연봉을 받아야 할 만큼 일반 노동자와 능력차가 크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정부 : 일리는 있군요. 부와 사회적 격차 해소차원에서라도 검토할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어린시절 70년 대를 지나온 나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만화방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집에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냉장고가 들어오고 연탄에서 석유곤로, 가스렌지까지 점차 생활환경이 바뀌어 가는 걸 보았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그게 희망이었나 보다. 옆집이나 앞집이나 살림살이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이웃의 정도 오가던 시절인데 지금은 그에 비해 너무도 잘 살게 되었지만 어쩐지 쫓기듯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되어 백수가 되는 것을 사회적 실패로 규정짓는다. 그런 백수가 소수일때는 모르지만 점차 늘어난다면 백수를 위한 정책들은 나와야 된다. 일을 하고 싶은데 일할 기회를 안 준다면 그게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보장된 국민들의 행복 추구권이 이 나라의 백수에게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백수는 기술문명의 발달로 비자발적 백수들이 늘어나는 게 시대의 흐름이다. 이왕 누구나 백수가 될 수 밖에 없다면 백수가 된 사람들은 그 생활을 좀 당당하게 즐기고 누릴 필요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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