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 내 공간의 퀀텀점프

by 장용범

원자의 세계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이 전자가 자기궤도를 벗어나 다른 궤도로 옮기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두고 퀀텀점프라고 한다. 퀀텀점프라는 이 단어는 어쩐지 발음이나 어감이 좋아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물리용어가 되었다. 이처럼 원자를 포함한 다양한 현상세계는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공간은 벗어나기 힘든 속성도 있어 전자가 자기 궤도를 돌듯 우리는 일상이라는 궤도를 돈다. 궤도가 공간의 영역이라면 주기는 시간의 영역이다. 주중에는 집과 직장을 주기적으로 오가고 있고, 일년에 두 번 맞는 설과 추석에는 온 국민이 고속도로를 메우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공간속에 활동하는 주기가 일정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안정감도 길어지면 변화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변화 중에는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큼 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젊은 시절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게 될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도시로 떠났기에 오늘날 현대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한국의 콘텐츠는 사드 배치 후 중국의 금한령으로 중국 비중이 30%대 에서 3%대 까지 추락하였으나 다른 세계로 활동 영역을 옮겨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렇듯 변화는 안정된 상황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익숙한 물리적 공간은 그 곳에 맞는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요구하고 그 속에서 안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간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지만 불안한 일이다. 가끔 출근길에 듣는 교통상황 속에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 등을 들을 때면 나도 삶의 터전을 퀀텀점프 하며 옮겨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아내가 서울 말고는 한 곳에서 3년 이상 살아 본 적이 없다기에 과연 그런가 싶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같은 지역이라면 집이라도 옮겨 다녔다. 사는 환경이 그토록 자주 바뀌었으니 힘들만도 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잘 적응해 주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성향이겠지만 반복적이고 루틴한 생활을 못견뎌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 곳에 가게를 열어 수 십년 동안 장사를 이어가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나로서는 돌아다니는 영업은 할 것 같지만 저렇듯 한 자리에서 하는 장사는 어려울 것 같아서다.


전자가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 다른 궤도로 가는 것을 퀀텀 점프라고 하듯이 내가 선택했던 퀀텀 점프는 나의 삶의 공간을 수시로 옮겨다녔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새로운 경험치들을 쌓아갔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설렘과 불안감의 비중도 처음에는 불안감이 컸으나 횟수가 거듭 될수록 설렘이 더 커졌다. 지금도 가끔 다른 공간으로의 퀀텀 점프를 생각한다. 이제는 온 가족이 움직이는 점프는 안 되겠지만 은퇴 이후엔 그 모습이 체류여행의 형태가 될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는 한 곳에서 오래 농사짓는 정주(定住)의 흔적 보다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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