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 작은 공간 하나 확보하기

by 장용범

집에서는 늘 내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스탠드 불을 켜고는 거실 전체를 내 공간으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거실의 테이블은 스타벅스의 긴 원목 테이블과 같은 형태이다. 거실에 TV 대신 책장을 놓자는 것도 내 의견이었고, 스타벅스의 콘센트가 있는 긴 테이블을 좋아해 일부러 업체를 찾아가 주문 제작해 들여놓은 것도 내 생각이었다. 덕분에 가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책 읽기 뿐만 아니라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가끔 삼겹살 파티도 여는 등 모임의 장소가 되는 건 좋은데 늘 누군가 뭔가를 하고 있어 정작 나는 시간차를 통한 새벽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나의 공간에 대한 갈증은 주말이나 퇴근 후 주로 카페를 찾아 해소하는 편이지만 늘 대안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다.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는 시험공부할 것도 아닌데 너무 정숙함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감이 싫었고, 그나마 사무실처럼 무언가에 집중도 하면서 카페 분위기도 나는 공유 오피스가 딱인데 이건 너무 비쌌다. 개인 사무실도 아닌 자유석이 거의 40만 원이나 해서 아무리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다 해도 퇴근 후나 주말에만 이용할 텐데 그런 비용을 들이기엔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접었다. 그런데 역시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인가 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감안한 공유 오피스를 회사 근처에서 찾아냈다. 일단 월 회비 33,000원으로 저렴하고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매일 한 시간씩을 배정해 준다. 추가 이용은 시간당 3,300원이 책정되어 이용시간을 유동적으로 늘릴 수 있다. 게다가 카페처럼 아늑하고 잔잔한 음악을 깔아주며 커피를 포함 간단한 식음료는 무제한으로 제공한다. 좌석은 개별 칸막이로 이루어져 독서실의 분위기도 있고 지정석이 아니어서 편한 자리 아무 데나 앉아도 된다. 예전에는 이런 공간이 없었는데 코로나 이후 새로 생긴 공유 오피스 형태인 것 같다. 나의 경우처럼 퇴근 후 2-3시간 이용하기에는 딱 좋은 공간이다. 지금의 이 글은 바로 그곳, 덕수궁 근처 공유 오피스인 ‘집무실’이라는 곳에서 작성하고 있다. 정식 등록 전 사전 체험인 셈인데 혼자 조용히 작업하기에 아늑하고도 좋다. 적당한 소음과 잔잔한 배경음악 속에 책도 좀 볼 수 있는 이런 공간이 필요했는데 무척 만족스럽다.


공간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영향을 준다. 대륙 스케일이라는 말도 있지만 땅 덩어리가 큰 나라 사람들은 성격도 좀 여유가 있는 편이다. 반면 우리처럼 좁은 땅에 살면서 거주지를 하늘로 쌓아 올린 아파트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바쁘고 번잡스러운 면이 있다. 이것은 도시와 시골의 삶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함께 재택 격리되어 12일 만에 출근한 직원이 있다. 그 생활이 어떠했냐고 물으니 다시는 할 짓이 못 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12일 동안 집 안에서 가족끼리 얼굴 보며 지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서 밖을 못 나가니 스트레스만 올라 서로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짜증부터 나더라고 했다. 좀 나가지 그랬냐고 하니 우리나라 IT기술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집을 조금만 벗어나도 휴대폰으로 경고가 뜨고 그걸 피하려고 휴대폰을 두고 주차장에 있는 차에 잠시 다녀오니 이번에는 휴대폰 동작감응이 안 된다고 또 연락이 오더라고 했다. 그런 감시를 피하려고 잔머리 쓰는 게 더러워서 집에 계속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분리수거를 못해 집안에 쓰레기가 쌓여 가니 짜증이 더 심해지더라고 했다. 나중에는 코로나 걸린 아이가 미워지기까지 하더라는 걸 보면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제한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 같다.


인간은 공간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이란 큰 공간 속에 건축이라는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공간은 너무 넓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좁아도 문제가 생기니 나에게 적합한 크기와 분위기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살고 싶은 거처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라는 곳에서 발견했다. 성북동 산자락에 있는 일자(一字) 모양의 한옥에 방은 세 칸, 툇마루가 있고 처마가 있는 한옥이다.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으며 지대가 좀 높아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나는 채워진 공간보다는 비어 있는 공간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래서 심우장을 처음 본 후로 그 공간의 매력에 끌려 가끔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 한용운이 그랬을 것처럼 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멀리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