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왜?" "재밌잖아!"

by 장용범

“돈을 내고 춤을 추면 놀이, 돈을 받고 춤을 추면 노동이다.” <법륜 스님>

이 보다 더 노동과 놀이의 경계를 확실하게 정의한 말이 있을까. 요즘 몇 가지 벌여놓은 일들로 좀 부산한 편이다. 그런데 즐겁게 하고 있다. 하고 싶어 하는 일들 이어서다. 3월이 되면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까지 개강하니 더 부산해질 전망이다. 벌여놓은 일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돈이 되는 일들은 없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돈을 써가며 배워야 하는 것들도 있고 하나같이 시간과 품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 ‘왜?’라고 묻는다면 ‘그냥, 재밌잖아’라는 중년 남자의 철없는 대답 밖에는 할 게 없다.


*재미 1

‘유라시아 평론’이라는 웹진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 부족한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대륙 관련 소식과 전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를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하는 일이다. 참여하는 분들 모두 본업은 따로 있지만 남북 교류와 대륙에 관심이 큰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전직 외교관을 포함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여 미국과 서방 중심의 편향된 국내 언론에 반하는 이정표를 하나 세운다는 작업이다. 어제는 편집 회의를 앞두고 편집국장님과 둘이 만나 사전작업을 논의했다. 현재 방송국 PD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이 일을 이끌고 계신 분이다. 둘이 만난 자리라서 친근감이 더 했는데 소주가 한 잔 돌자 서로가 대륙과 러시아에 관심을 가진 계기를 이야기했다. 나의 경우는 우연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계기로 관심이 생겨 이후 대륙 학교, 크라스키노 포럼에의 참여로 이어졌고 국장님은 고려인 방송 취재를 위해 95년도에 3개월 동안 소련 땅을 누비고 다닌 게 인연 되었다고 한다. 둘 다 한반도 남쪽의 우물 안 개구리로만 살다가 대륙 땅을 처음 접하고 느낀 감동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어제의 만남은 인바운드 개념의 ‘웹진’과 아웃바운드 개념의 ‘뉴스레터’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재미 2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글쓰기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다. 어차피 글을 쓰려고 진학하였으니 매일 글을 써보자는 취지였는데 벌써 550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글도 썼지만 ‘POD 출판’과 ‘등단’을 주제로 두 번의 세미나도 개최했었고 회원 중 한 분의 주도로 문학관 탐방도 수차례 다녔다. 모임이 회원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면서 졸업 후에도 계속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새로 시작하려는 작업이 ‘독립출판 배우기’이다. 이미 개인적인 출판을 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기획, 편집 단계에서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 진행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5개월 과정으로 만만치가 않다. 혼자 한다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함께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글을 쓰고 출판까지 내 손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작업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음식 솜씨 좋은 내 어머님의 요리책을 한 권 내 드릴까 싶은 목표도 세워 본다.


*재미 3

새벽에 이어가는 리츄얼(儀式)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4시쯤 일어나 글을 쓰고 다듬다가 여섯 시가 되면 아침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산을 오르면서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내어 본다. 마침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정상에 도착하면 남산 방향부터 시작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섯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는 ‘봉수대의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리고 있다. 거기에 붙이는 나의 글은 늘 한결같은 각성의 글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나의 삶과 내 인생의 모든 인연들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이런 리츄얼이 좋은 점은 전날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해서 저녁의 무리한 일정을 회피하게 된다. 가능하면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지나친 음주로 몸이 힘들면 패턴이 깨어지기에 조심하게 된다. 오늘처럼 날이 춥거나 하면 가기가 싫지만 ‘오늘 하루만 이겨보자’는 마음을 내어본다. 그럼에도 매일 가는 게 어렵긴 하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이라는 마법 같은 주문은 효과가 큰 것 같다.


그 외의 재미로는 책 읽기, 요리하기, 가족들과 낄낄거리며 놀기, 하릴없이 돌아다니기, 외국어 배워 말하기, 한강 라이딩 하기, 레고 조립하기, 중국 찻집에서 차 우리기, 가끔 바에 서 혼자 술 마시기, 대형 서점에서 기웃거리기, 정한 곳 없이 훌쩍 여행 떠나기, 전시회나 공연 보러 가기 등등 지금의 내 나이에 이렇게 체신머리 없이 재미있게 놀아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좀 가볍고 재밌게 살아 볼 일이다. 5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남이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에 전전긍긍하는 건 어쩐지 나 스스로에 대해 면이 안 서는 일이다. 중년의 은퇴할 시점이 되고 보니 ‘성공’이라는 말보다는 ‘재미와 의미’라는 말에 더 마음이 간다. ‘성공’은 남이 나를 인정하고 알아주어야 가능하지만 ‘재미와 의미’는 온전히 나 스스로 누릴 수 있는 가치이다. 이제 남의 인정과 평가에서 좀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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