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기준 정하기의 딜레마

by 장용범

2년마다 받는 자동차 검사날이었다. 백신 휴가일에 일부러 맞추었기에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별 문제가 없겠거니 했는데 전조등 불빛이 기준에 미달한다며 교체 후 재검사 결론이 났다. 마침 검사장 안에 간단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업체가 상주해 있어 교체 후 통과할 수 있었다. 자동차 검사를 받기 위해 사전 점검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현재 타는 그대로 자동차의 상태를 살펴보는 게 검사 취지에 더 맞는 것 같아서다. 우리는 시험이나 검사를 받는다고 하면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지금의 상태를 알고자 하는 점검의 차원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예전의 한 상사는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건강 검진일이 다가오면 일주일 정도 금주를 선언하였다. 검진 결과를 잘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게 좀 이상했다. 건강검진은 평소의 생활습관을 유지한 상태로 받아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검사 결과를 잘 받기 위해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게 맞는 건지 아리송했다. 괜히 비싼 검진비만 날리는 것 같아서다. 그는 검진일이 지나면 술을 다시 평소처럼 마셨다. 과속으로 달리다 카메라 앞에서만 얌전한 자동차가 되는 것처럼 어떤 평가나 검사를 앞두게 되면 괜히 위축이 되는 게 사람 심리이다.


직장생활 중에는 인사고과로 직원들을 평가해야 하고 부서 간 업적 평가를 통해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그러니 평가기준을 만드는 일은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결과에 따른 이해관계가 나누어 지기에 평가기준은 만들 때부터 이의제기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번 정해지면 최소 일 년은 가야 하고 중간평가도 있다 보니 평가받는 대상 대부분은 방법이나 기준에 대해서 민감하게 여긴다. 그래서 어느 조직이든 기준을 만드는 사람은 적어도 그 분야에서 만큼은 작은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기준을 만들다 보면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준은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잘하고 있는 지점 위주로 만들게 되면 그 보다 못한 지점들은 못 따라간다고 아우성이고, 그렇다고 너무 낮은 수준으로 정해 두면 평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특히 추상적인 것을 평가할 경우에는 그것을 계량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항목을 정하는 것부터 기준을 잡는 것까지 어려움이 많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산다’는 것을 평가한다고 치자. 지극히 추상적인 평가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계량화 해야 한다면 먼저 평가항목부터 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기부금액, 봉사시간을 항목으로 잡았다면 이번에는 기준을 정해야 한다. 기부금액은 연간 100만 원, 봉사시간은 한 달에 한 번 최소 네 시간 이상으로 정했다고 하자. 다음에는 이해관계자들의 각종 항의와 이의제기를 받게 될 것이다. 소득이 연간 10억 인 사람이 100만 원 기부한 것과 3천만 원인 사람이 100만 원 기부한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그게 착함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느냐부터 어떤 행동을 봉사라 할 것이냐 까지 끝없는 항의에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평가기준을 정할 때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득의 논리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는 기준이나 평가방법이 점점 복잡해져 가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고 까라면 까라는 식의 막무가내로 정하게 되면 기준을 따라야 할 사람들의 반발로 이어져 소기의 평가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보통 평가 기준을 정할 때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타인에게는 엄격하게 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갈등의 원인이 된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으며 개별 상황에 따라 이익을 보는 경우와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나누어진다. 없던 기준을 새로 세워야 할 때 중요한 것은 이 기준이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다. 또한 기준이 너무 높거나 많으면 사람이나 조직은 거부감을 갖고 수동적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런 우화가 있다. 지네가 그 많은 발들을 자연스레 움직이며 걸어가는 게 신기해서 누군가 물어보았다. ‘너는 움직일 때 어떤 순서로 발을 떼며 걸어가니?’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지네는 걸을 때 발의 순서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되자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도 ‘있는 법은 함부로 폐하지 말고, 없는 법은 함부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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