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무엇하나 진득하게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무언가를 시작했다가도 이내 관심이 시들면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대 때 안정된 직장을 잡아 정년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중도에 두어 번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혼 후에 이어진 가장이라는 책임으로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성향 탓에 다가오는 은퇴를 남들과는 달리 좀 가볍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날이 오면 또 다른 마음이 생길는지 알 수는 없다.
여느 때처럼 하루의 블로그 글을 1인 기업가들이 활동하는 오픈 채팅 방에 올렸더니 백기락 대표께서 ‘폭넓은 주제에 감탄한다’는 칭찬의 글을 올려 주셨다. 쑥스러움에 직장일 빼고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편이라고 답장했더니 이번에는 홍 대표께서 ‘모든 것이 되는 법’이란 책의 일독을 권하며 그리 살아도 된다고 하신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싶어 주말을 기해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저자인 에밀리 와프니도 나와 비슷했는데 무엇하나 끝까지 파고드는 편은 못되어 어딘가에 빠져들다 이내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것으로 옮겨 타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지니 지금은 Multipotentialite(다능인)이라 불리는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각광받게 되었다고 했다. 이것저것 연결이 가능한 창조성, 빠른 학습력 그리고 뛰어난 적응력은 변화 많은 오늘날 딱 들어맞는 인재상이라는 말이다. 책의 초입부터 흥미 있게 읽어가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이것저것 관심 많은 다능인으로 지내는 게 나름 장점이 많음을 알게 된다. 사실 나의 성향에 대해 마음 한 켠에는 찝찝함이 있던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다재다능한 사람보다는 전문가를 우대하는 분위기이고 ‘재주 많은 놈 밥 굶는다’는 말도 있듯이 이런 사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다능인 가운데는 아인슈타인 형이 있다. 아인슈타인처럼 똑똑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과학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스위스 특허국이라는 안정되고 시간 여유 있는 직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능인이라고는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돈벌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돈+의미+다양성’은 다능인이 추구하는 기본가치인데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직원으로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고 그리 힘들지 않은 근무환경 덕에 자신이 좋아하는 물리학 연구를 개인 프로젝트 차원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특허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발표한 논문이 ‘특수 상대성이론’이다. 이와 겹치는 법륜 스님이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이 있다. 먼저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일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먹고사는 것부터 독립적으로 해결하라.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지는 말고 시간 내어하고 싶은 것을 병행하다가 어느 시점에 하고 싶은 것만으로도 먹고살만하거든 업을 갈아타라고 하셨다.
Multipotentialite(다능인)이라는 관점으로 나를 비추어 보면 전형적인 아인슈타인 형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근무하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직장 내 업무도 선택의 여지가 많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은행으로 입사해 판에 박힌 창구 일에 싫증 날 즈음 공제(보험) 상담사 관리업무를 지원했고 나중에 회사가 금융지주 계열로 사업 분리할 때는 보험사로 넘어와 보험설계사 관리업무를 계속 이어갔다. 업무의 특성상 전국의 지점들을 사흘이 멀다 하고 누비고 다녔는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내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남들이 선호하는 기획, 관리 등의 업무보다는 장소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자, 이제 직장생활 31년 차 은퇴를 앞둔 다능인으로서 Next Version은 무엇일까? 역시 아인슈타인 식 안정형을 추구한다. 오랫동안 부은 연금으로 나름 안정된 노후보장으로 먹고살만한 소득을 확보한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대륙 진출에 대한 아젠다를 만들어 가고, 글을 쓰고 흥밋거리를 배우며 현지 체류식의 여행을 통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꽤나 흥미로울 것 같다. 주말에 읽은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를 재정의 할 수 있었고 이리 사는 게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다능인의 ‘돈+의미+다양성’ 면에서는 내가 지향하는 최선의 삶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