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해내지 못했을 때 보통 의지력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뇌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의지력은 너무 고평가 되어있다고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나 금연을 하고자 할 때도 의지력을 이야기 하지만 인간의 의지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뇌 과학의 입장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주위에 책을 많이 두면 되는 것이고, 금연을 하고 싶다면 담배가 보이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환경 속에 책 읽는 행위나 금연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이제는 뇌의 구조가 변화하게 되고 달라진 습관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습(習)’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풀이한 것 같다. 성공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한 번에 큰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니리 가랑비에 옷 젓듯이 작은 성공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 큰 성공도 어색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처럼 습관의 힘은 강력한 면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자주 보면 정이 들고 만나다 보면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심리학 실험이 있었다. 유능한 과학자(긍정), 평범한 사람(중성), 범죄자(부정)로 소개한 세 장의 사진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1회, 5회, 10회씩 보여주었다. 실험 후 호감도를 측정한 결과 긍정적 인물의 대한 호감도는 볼수록 증가했고 중성적인 인물도 소폭 증가하였으나 부정적 인물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평가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심리학자 이민규 교수는 이 실험을 인용하면서 만일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1. 자주 만나고 2.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고 3. 그 과정에서 불쾌한 기분을 유발하지 마라고 권한다. 만날수록 기분까지 좋아지면 더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쾌한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제 카톡으로 어느 선배님의 자녀 결혼을 안내하는 청첩장이 날아왔다. 여러 정황상 친하게 지내려면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선배였다. 그분이 입사할 때 실무자로 관여했고 그 후로도 같은 업무를 하며 알고 지낸 세월이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인연이다. 그런데도 청첩장에 대해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본인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처음에는 후배인 내가 안부를 묻기도 했는데 그것도 워낙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서서히 연락을 않게 되었다. 평소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오래갈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달리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분은 아들 결혼한다고 후배인 나에게 청첩장을 보낸 것이고 그에 대해 이런저런 감정의 파도를 탄 것은 나였다. 결과적으로 이건 나의 문제이다. 축의금이야 하든 말든 선택하면 될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괜한 감정의 낭비를 하였으니 내 문제라는 것이다.
나에겐 별다른 용건 없이 가끔 연락을 주는 후배가 있다. 때로는 전화로, 카톡으로 툭툭 건네는 인사가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그런가 하면 함께 근무할 때는 너무도 살갑게 대하던 후배가 있었다. 돌아보면 본인의 막혔던 인사 문제를 꽤나 해결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자 연락이 뚝 끊어진 경우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습관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잊을만하면 연락을 주는 사람이 아무래도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호감도가 올라간다. 내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돌아보자. 내가 혹시 사람들을 대함에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낯선 사람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