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절 일어난 일이다. 당시 소련은 같은 공산권 국가인 쿠바에 비밀리에 미사일 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미국에 의해 발각되자 백악관이 소련에 보인 반응은 전면전을 각오하라며 쿠바 해상봉쇄를 실시했다. 당시 전 세계가 두 강대국으로 인해 3차 세계 대전이 터질까 봐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던 사건이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소련의 미사일 부품들을 싣고 쿠바로 향하던 배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사건은 종료되었고 케네디는 소련의 침략으로부터 미국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미국은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만일 쿠바에 소련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배치되면 미국 전역이 소련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안보의 큰 위협에 놓이기 때문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그런데 그 큰 나라가 해체되는데 총성 하나 없이 너무도 평화롭게 분리되었다. 유럽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포함 15개국으로 나누어졌다. 그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이다. 냉전 당시 유럽은 군사동맹으로 미국을 포함한 자유주의 진영의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공산진영의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대립하고 있었고 소련의 해체 당시 양 진영의 군사동맹도 해체한다는데 비밀합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공산진영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해체되었지만 미국 중심의 NATO는 여전히 해체되지 않고 남아있는 강력한 군사동맹이다. 게다가 NATO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일원이었던 폴란드, 루마니아 같은 나라뿐만 아니라 구 소련에서 분리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NATO 회원국으로 가입시켜 점점 세를 불려 가는 상황이다. NATO 회원국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만일 동맹국 중 하나라도 외부의 군사공격을 받게 된다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대대적인 무력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옛 동맹국들은 그렇다 쳐도 소련연방의 일부였던 세 나라까지 NATO에 가입하는 것까지는 참고 묵인한 면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 러시아가 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켜 우크라이나 내 미국의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싶어 한다. 우크라이나에 미국의 군사기지가 설치된다는 것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의 주요 도시들이 미국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금도 모스크바가 위치한 유럽지역의 러시아는 NATO 회원국들에게 둘러싸여 불편한 상황인데 마지막 우크라이나마저 NATO로 넘어간다면 정말 포위당하는 형국으로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NATO의 회원국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미국을 포함한 NATO가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만일 NATO 회원국이 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그전에 손을 써야 할 상황이다. 이것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의 핵심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도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지역이다. 최고의 곡창지대이고 러시아의 가스관이 유럽으로 통하는 통로이자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미국이나 NATO가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돈과 무기를 댄다거나 우크라이나를 통한 대리전은 할 수 있겠지. 이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고 지금 러시아 군대가 수도 키예프 근처까지 진격한 걸 보면 조만간 서방의 중재로 전쟁은 끝날 것 같다. 결국 미국이 옛 소련 연방인 우크라이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러시아를 자극한 결과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가 입고 말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항복할 것이고 향후 친 러시아 정부가 세워질 것 같다. 사실 미국은 이 사태로 얻을 건 있다. 우선 러시아에 위협을 느낀 유럽의 방산시장이 크게 열릴 것 같다. 러시아 가스관에 의존하는 유럽이 미국의 천연가스 구입을 확대할 것이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LNG선 제작이 늘어 조선업에 호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활은 많이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이 자국의 금지어인 러시아어로 러시아 국민들에게 평화를 호소했다고 한다. 다신 러시아 비위 안 건 드릴 테니 그만하자는 메세지겠지.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남의 힘으로 나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내는지 보여준다. 이래저래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건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전쟁을 겪지 않으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