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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작은 도전들이 좋아

by 장용범

어릴 적엔 권투가 꽤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은 거의 TV로 중계를 하여 전 국민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보는 단골 메뉴기도 했다. 그런 타이틀 매치는 챔피언이 있고 그 자리를 새로 차지하려는 도전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보면 도전하는 입장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도전하다 안되더라도 그냥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챔피언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하니 경기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더할 것 같다.


하루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난다. 대부분은 루틴 한 일들이지만 가끔은 새로 시작하는 일들도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하지만 도전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만 오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괜한 짓을 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큰 도전일수록 그런 마음은 더하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굳이 뭔가를 새로 시도하고 도전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하지만 이는 어렵게 챔피언 타이틀을 쥐었으니 앞으로 모든 도전은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챔피언이 챔피언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챔피언 벨트 때문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도전을 받아들이고 도전자들을 물리쳤기 때문에 챔피언인 것이다.


변화 없는 삶은 어쩐지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롤러코스트 타듯 큰 변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변화는 삶의 활력을 주는 요소이다. 예상대로 올해 들어 직장의 일은 무척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년에 일부 직원들을 내보내고 영입 대상 직원들을 개인면담 등의 사전작업을 통해 부서로 데려왔었다. 그리고 내부 직원들의 업무분장을 새로 개편하고 민원관리 업무를 팀으로 승격시키고 나니 이제야 톱니바퀴 돌듯 질서가 좀 잡혔다. 돌아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참 어렵사리 구축한 부서의 안정이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봄이 오면 작은 변화를 기할 일거리를 구상 중이다. 개인이나 조직은 안정 단계에 접어들면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년 이후의 도전은 좀 만만한 걸로 자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비록 그로 인해 큰 보상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해도 도전과 변화에 대한 감각은 유지할 수 있어서다. '인생 다 그런 거지'라고 하면 그때부터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들만 남게 된다. 사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가진 것이라고는 하드웨어인 몸 하나와 그 안에 깃든 소프트웨어 격인 마음이나 생각이 전부일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태어난 순간부터 모래시계처럼 줄어드는 시간이다. 이 질료로 외부의 것들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들거나 변화를 기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도전이다. 군에서 말년 병장이 되면 시간이 참 지루하게 안 간다. 마음이 전역 시점에 가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마지막 1년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저런 망념에 빠지지 말고 그냥 작은 도전거리를 찾아 하나씩 해결해 보는 것으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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