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72. 사람마다 가진 공간

by 장용범

경계는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선이다. 어떤 형태로든 경계를 넘었다는 건 상대를 침범했다는 것이고 이후에 양측의 충돌이 예상되는 행위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각자의 경계를 지니고 있다. 동물들도 자신의 영역표시를 소변으로 하고 있어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그 영역을 넘어서면 전투 모드로 바뀌는 것을 본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국경은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국경은 있다. 그리고 국경을 유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각 나라들의 막대한 비용들을 생각하면 경계를 유지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임을 을 알 수 있다. 경계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도 경계를 넘어서면 갈등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경계란 물리적 거리이기도 하다. 낯선 사람이 불쑥 나에게 다가오면 흠칫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인간 심리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그 거리는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학부의 전공이 공간과 연관된 조경이었다. 당시 나는 어느 교수님과 꽤나 친밀한 사이였는데 방학이 시작될 무렵 읽어 보라고 주신 책이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이었다. 당시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상대에 따라 허용되는 거리(공간)가 다르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도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에게 공간은 친밀한 공간, 개인적 공간, 사회적 공간, 공적인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친밀한 공간과 개인적 공간의 구분이 흥미로웠다. 친밀한 공간은 가족이나 연인처럼 서로의 신체접촉이 가능한 수준(0~46Cm)의 거리지만 개인적 공간은 양팔을 벌려 원을 그렸을 때 만들어지는 정도(46~120Cm)로 지인이나 친구 간의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거리였다. 이 두 공간의 구분이 중요한데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개인적 공간을 넘어 친밀한 공간으로 불쑥 들어오는 건 상대에게 거부감이나 공포감을 줄 수 있어서다.


이처럼 개인적 공간은 격식과 비격식의 경계지점으로 여기서 더 멀어지면 긴장감이 줄어들고 친밀감도 떨어지게 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긴장감이 올라가게 되는 경계지점이다. 친밀한 공간과 개인적 공간을 일컬어 사적 공간이라고도 한다. 그 이상의 거리는 사회적 공간(120 ~360Cm), 공적인 공간(360Cm 이상)인데 개인 간의 관계가 형성되기는 어려운 공간거리이다. 사적 공간과 공적공간은 심리적 거리에서도 구분이 된다. 만일 세 사람이 개인적 공간(46~120Cm)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다면 거부감을 주는 행위이다. 눈치 없다는 것은 공간 구분을 못한다는 것도 포함되는데 그럴 경우 최소한 허락은 구해야 한다.


그런데 에드워드 홀의 공간 개념이 영업에서 언급될 줄은 몰랐다. 한 사람의 고객을 확보한다는 것은 개인 간의 공간적 거리를 줄여가는 활동이라는 말을 듣고 문화인류학이 이렇게도 응용되는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개인을 중심으로 엄연히 공간은 단계별로 구분되어 있고, 그 공간을 하나씩 넘어 설 때는 상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내 허락 없이 공간의 경계를 불쑥 넘어온 이에게는 명확한 경고도 주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의 사적 공간을 지키는 일은 나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