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상관없이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 여겨지는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다. 길거리에서 한 번씩 보게 되는 특정 종교를 전하는 집요한 사람들도 있지만 지구를 살리자는 환경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고, 끊어진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하자는 시민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매년 사할린으로 건너가 강제 이주 1세대 어르신들에게 이듬해 고국의 달력을 전하고 오는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제일 큰 문제는 그 활동들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활동이긴 하나 개인에게는 별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도 생활은 해야 하기에 무언가 벌이는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이상과 꿈을 좇아 시간과 노력을 쏟다 보니 주위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유라시아 평론’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계신 김 교수님을 늦은 오후에 만났다. 현재 유라시아 전문위원으로 대외정책 활동도 하시지만 최근 펴낸 ‘루소포비아’의 베스트셀러 진입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여기저기 찾는 곳이 많아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 분이다. ‘유라시아 평론’의 실무적인 논의를 마친 후 저녁을 겸해 소주를 한 잔 기울였다. 자리가 무르익자 우리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5공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했었던 당신의 삶 자체가 평생 꿈을 추구하며 살아온 인생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모스크바 유학 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북방 러시아 전문가가 되었지만 그동안 마음고생도 상당했을 것이다. 신촌의 한 고깃집에서 중년의 남자들이 꿈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이보다 더 철없이 보이는 풍경이 있을까 싶다.
여기 또 하나의 꿈을 좇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30년 전 점점 세속적으로 흐르는 불교의 문제점을 내부에서 비판했으나 더 이상 의미 없다 여겨지자 스스로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수행 공동체를 설립했다. 법륜 스님의 이야기다. 오랜 기간 스님의 활동을 지켜보았다는 한 노인의 말씀을 빌자면 젊은 시절 얼마나 열정적이던지 저러다 몸 상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백일을 정진하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고, 천일을 정진하면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으며 만일을 정진하면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만일은 30년의 세월이다. 스님은 30년 전 국민들과 불자로부터 비난받던 불교의 신뢰 회복과 사회변화를 위한 만일결사를 시작했고 만일을 한결같이 새벽기도를 진행하여 최근 만일을 채우셨다. 만일 간의 기도 덕인지 30년 전에 비하면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하긴 했다.
사실 꿈은 없는 게 좋다. 꿈이 생기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개인이 꿈을 좇기 가장 좋은 나이는 50대 은퇴 후인 것 같다. 인생을 80세 정도로 보면 20대 중반까지는 사회진출을 위해 학습하며 배우는 시기이고 30대 에서 50대까지는 직업을 얻고 가정을 꾸리는 등 소위 먹고살기에 바쁜 시기이다. 그러다 50대 후반 은퇴를 맞게 되면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직장이나 가정의 부담에서 벗어날 시기가 된다. 이때부터 인생의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70세 정도까지 이어진다. 인생을 통틀어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은퇴 후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통계조사에 따르면 삶이 가장 윤택하고 여유로운 시기이다. 시간, 건강, 재력 등에서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이 시기는 자신의 꿈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꿈을 좇기 딱 좋은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