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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뭔가는 꼭 일어난다

by 장용범

‘To Do List를 나열하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골라라. 그리고 나머지는 지워라.’ 워런 버핏이 전했다는 인생 성공의 원칙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에게는 많은 일을 할수록 그리고 바쁠수록 좋다는 것이 내면화된 것 같다. 버핏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은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은 다음 일에 가있는 경우를 간파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을수록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몸도 마음도 축 처지면서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의식 저변에는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디폴트 값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래도 되는 여건이니 하기 싫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좋고, 있으면 있는 대로 좋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과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무언가를 하며 바쁘게 살아가지만 무한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직면하게 되면 그냥 멍해지는 것 같다. 파우스트 박사와 거래 했던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느 날 나에게도 나타나 ‘당신은 지금부터 늙지도 않고 영원히 살 것이고, 부와 명예, 인간의 모든 욕망을 맘껏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치자. 그다음 나에게 오는 것은 허무일 것 같다. 좋고 귀한 것은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주변에 늘려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다면 더 이상 귀한 게 아니다.


아무리 인간에게 무한의 시간과 재화가 주어졌다 해도 그것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닐 때 비로소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이건 참 아이러니하다. 어떤 욕망의 대상을 추구하지만 막상 그것이 넘쳐나면 시큰둥해지니 말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도 너무 남발할 말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할 형편이기에 그게 커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이다. 혹자는 꿈은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꿈이 달성되면 그것은 현실이지 더 이상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To Do List 중 첫 번째는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저녁 경주의 스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장 거사, 내일 서울 가는 길인데 시간 되면 퇴근 후 차나 한 잔 합시다.” 이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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