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80. 오늘에 집중하기

by 장용범

“어라, 쟤네들이 계획을 짜네. ㅋㅋ”

신이 인간들을 보고 하는 말이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계획이라는 타이틀의 보고서를 많이 접하게 된다. 보통 한 해의 여름을 넘기면 내년도 사업계획을 구상한다. 사업예산을 받으면 이번에는 그것을 집행하기 위해 추진계획을 세운다. 예산은 얼마나 들 것이며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고 효과는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계획에 비해 성과는 늘 한 템포 느리게 나타난다. 3D 프린터기처럼 재료를 넣으면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실행을 위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고, 그 힘을 한 방향으로 모아야 조직이 움직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획담당은 일 년 내내 계획을 세우는 게 일이다. 매일 모니터와 A4 용지에 머리를 파묻고 끙끙대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일상인 시대에는 계획을 세우는 중에도 환경이 바뀌니 머쓱해질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2년 동안 세계 경제가 기진맥진할 줄 누가 알았으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민들 통장에 돈을 그냥 입금시켜 주는 일도 생겨났다. 그리고 21세기에 미사일과 탱크를 앞세운 전면전이 벌어질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는데 동북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러시아 투자와 관련된 변액보험 펀드에 노후자금이 물린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돈이 러시아 펀드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어 금융회사는 향후 민원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노자에는 천지 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의 뜻은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는 개개인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도 된다. 그러니 계획은 아무리 잘 세워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화이트 플랜’이란 현실성 없는 계획을 말하는데 주변에는 이런 화이트 플랜들이 참 많이 나돈다. 나도 꽤나 많은 하이트 플랜들을 작성했던 것 같다. 요즘엔 계획 세우는 일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가능하면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것도 연습이 좀 필요하다. 가만두면 생각은 늘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데 나의 경우엔 과거보다는 미래에 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최근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고자 시도해 보는 방법이 있다. 아침에 A4 한 장을 꺼내어 네 등분으로 접는다. 첫째 칸에 오늘 할 일을 생각나는 대로 쭉 적어본다. 둘째 칸에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첫째 칸에다 적은 오늘의 할 일을 오전 오후로 배치해 적는다. 셋째, 넷째 칸은 그냥 메모 용도로 사용한다. 그렇게 하루를 오전, 오후의 할 일 위주로 실행하고는 저녁 6시가 되면 미련 없이 종이를 찢어 휴지통에 버린다. 최근 읽었던 책에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이 있다.

“내일을 사는 사람은 오늘만 사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오늘도 오늘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