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적으로 형용사는 명사나 다른 형용사를, 부사는 주로 동사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런데 형용사나 부사는 둘 다 ‘How’에 관한 내용이다. 달리기는 달리되 어떻게 달리고, 사과는 사과인데 어떤 사과인가에 관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 사람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가에 따라 자신의 심리적 포지셔닝이 정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무래도 긍정적인 수식어가 많이 붙을수록 상황을 주도하게 된다.
여기 40대인 한 직원이 있다. 회사에 불만이 많고 이 직장에선 자신의 미래가 없다며 입버릇처럼 그만두겠다는 말을 달고 산다. 설령 마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표현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경솔한 행동을 자주 하는 직원이다.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보이니 주변 사람들은 그와 거리를 두게 되고 자신의 에고도 너무 강해 함께 하자며 손을 내밀어도 뿌리치며 고립을 자초한다.
반면 부서에 늦게 전입 온 어린 직원이 있다. 평소 말을 잘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과 부서 공통의 일들을 처리했다. 내색은 않지만 일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같은 직급의 다른 선배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선후배 관계인 그들 사이에 흥미로운 현상을 보게 되는데 어리고 입사도 늦은 그가 선배들을 서서히 리드하며 상황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아무리 상사라도 불평불만이 많은 직원에게는 비중 있는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은데 일을 할당하는 과정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중 있는 일이라 여겨지면 믿을만한 어린 그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맡겨진 일을 혼자서 끙끙대며 하는 것 같았는데 점점 재미난 상황이 벌어졌다. 그가 상대적으로 비중 있는 일을 맡을수록 부서에서 점점 주도적인 위치에 서게 되더니 입사로 보나 나이로 보나 선배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적절히 배분하며 완성시키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옳다 그르다에 대한 가치 기준이 있고 스스로 느끼기에 부정적 행동을 하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되는 면이 있다. 세상 사람 다 몰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사람은 삶이 당당하지 못하고 자기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을 굳이 그렇게 살 이유가 있을까. 쉬운 일만 하고 일을 떠넘기는 행위가 똑똑하게 사는 방법 같겠지만 길게 보면 헛똑똑인 셈이다. 상사의 위치에선 그런 모습들이 그냥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