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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느슨한 만남이 좋다

by 장용범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면 생각이나 활동도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주말에 가졌던 두 개의 모임은 최근 직장을 벗어나 확장하고 있는 나의 활동반경을 보여주었다. 인터넷 신문 창간 준비팀이 오랜만에 오프모임을 가졌고, 1인 창직 학교의 인연으로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세미나가 있었다. 요즘은 만남과 헤어짐에 부담 없는 느슨한 만남들이 끌린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흥밋거리를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은 생활의 활력이 되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면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퇴직하신 선배님 한 분을 만났는데 나에게 계약직이든 뭐든 지금의 직장에 더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권하셨다. 막상 퇴직을 하면 소득 절벽과 시간 보낼 곳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는다는 얘기였다. 소득이 끊기는 건 맞는데 시간 보낼 곳이 없다는 것은 좀 이상했다. 당신이 퇴직을 해보니 넘치는 게 시간이라 생활 패턴이 점점 늘어지게 되고 하루가 그리 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그분은 정규직 은퇴 후 계약직으로 60세까지 채우고 나가셨는데도 아쉬움이 있으셨나 보다.


지금 민원조사역으로 근무하고 계신 다른 선배님도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현직에 있을 때 부서장으로 근무하다 그만두신 분인데도 은퇴를 하니 자신이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인간관계는 모두 단절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민원조사역 채용공고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원서를 냈다는데 그 선배님도 퇴직 후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더라고 했다. 시간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냐 했더니 퇴직 안 해 봤으니 그런 소리 한다며 일축하신다.


직장에 오래 다닐수록 인간관계는 직장 내에서 머물고 만다. 이를 가축이란 말에 빗대어 사축이라고 부른다. 가축은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만 먹고 자고 지낼 수 있지만 야생에서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그런 면에서 직장인도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직장은 언젠가 그만두어야 할 곳이다. 다니면서 미리 걱정할 것은 없지만 자신의 모든 관심을 오직 회사의 일에 두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일이 취미라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 크게 성장할 소수의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그게 안된다. 일부만 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시켜 너도 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왜 안되지라는 자기 비하 밖에는 남는 게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끌리는 것이 있으면 조금씩 해보자.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느슨한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들과의 만남은 생활의 또 다른 활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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