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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 주화파와 척사파

by 장용범

기시감 (旣視感)이란 말이 있다. 시전적 의미로는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이라고 되어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지금의 상황이 조선시대 병자호란과 너무도 비슷해 보여서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년)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해 벌어진 전쟁이다. 왜 일어났을까? 조선이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외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륙의 정세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가 힘을 얻던 명청 교체기였다. 조선은 오랫동안 군신의 예를 갖추던 명나라의 뒷배만 믿다가 청나라에게 모질게 당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정치적 판단은 권력자들이 했지만 전쟁의 고초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짊어졌다.


러시아가 일으킨 침략전쟁에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이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각되는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정말 무능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는 러시아와 외교적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국경지대에 러시아의 병력이 집결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것이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나 NATO가 군대라도 파병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국제관계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이번 전쟁은 어느 모로 보나 미국만 이득을 보는 전쟁이다. 전쟁터는 우크라이나 땅이고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질수록 거인 러시아는 힘이 빠질 것이다. 단지 중국이 거슬리긴 하다. 전 세계가 미국이 요청한 대로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데 중국만 자국의 이득을 챙기며 러시아를 지원하는 형국이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은 유럽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것이고 무기나 에너지 수출도 늘어날 것이다.


불쌍한 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복기해 보면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은 가정이 몇 가지 있다. 전쟁 전의 상황이라면 경제적으로는 미국이나 유럽과 교류하지만 정치,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와 가까이하는 외교정책을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굳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을 점령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연방의 일원으로 우크라이나를 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 초기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이 제공하는 도피처로 일찌감치 달아나 버렸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전쟁은 조기에 끝났을 테고 지금처럼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이전의 상태로 복구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것인가. 냉정하지만 주식시장에는 전쟁의 총성이 울리면 주식을 사라는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으로 얻을 게 없다. 미국이나 NATO는 무기나 돈은 지원할지 몰라도 직접적인 군사지원은 어려울 것이다. 누구도 세계 최대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와 전쟁으로 엮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싸움은 네가 해라. 뒤에서 응원은 할게라는 게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입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조정은 주화파와 척사파로 나누어졌다. 늦었지만 화의를 열어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화파. 죽어도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 없으니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그 옛날 조선의 병자호란을 떠올린다.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걸까. 왠지 나는 주화파에게 더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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