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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

by 장용범

올해에 설계사 부서를 맡게 된 부서장이 점심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요즘 조직의 위축과 실적부진으로 많이 고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건넨 “힘들어 죽겠어요”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안다. 한 때 나도 그랬으니까. 스트레스 관리나 잘 하라고 했더니 그나마 동호회에 가입해 주말에 자전거 타는 게 낙이라고 했다. 멀리 라이딩 원정까지 갔던 이야기와 이번에 새 자전거도 구입했다는 걸 보면 꽤나 심취한 모양이다. 그런데 동호회원들이 부산까지 자전거로 가자는데 아직 결정을 못했다기에 이미 경험한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 걱정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몇 년전 4대강 유역 정비로 고향인 부산까지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다기에 가보고 싶어졌다. 당시 가지고 있던 자전거는 바퀴가 작은 미니밸로로 주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 가볍게 타고 다니는 자전거였다. 좀 작기는 하지만 가볍고 폴딩도 되니 그것이 장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다는 생각도 있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겼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혼자서 미니밸로로 부산까지 갔었던 경험은 그 후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적용할 만한 툴을 안겨 주었다.


첫째, 하는 데까지 해보지 뭐.

반드시 해낸다는 생각은 안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상황이 어떨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꼭 해내리라 장담 할 수 있을까. 다만 패달을 밟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나가니 가는 데까지 간다는 가벼운 마음을 냈었다. 끝까지 간다는 마음보다는 힘들면 중간에 접고 오겠다는 마음을 내니 시작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둘째, 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미니밸로로 부산까지 가는 게 무리일까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니 어떤 교수분이 미니밸로로 부산까지 갔다는 내용이 나왔다. 누군가의 사레는 도전하는 이에게 급격히 자신감을 키워준다. 그래? 그 사람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셋째,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는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림을 그려보니 가장 난감해 할 경우가 타이어 펑크 났을 때일 것 같았다. 자전거 수리점이 중간에 있을리 없고 스스로 조치해야 할텐데 나는 그 방법을 몰랐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주말에 집 근처 자전거 대리점에 가서는 타이어 교체하는 법을 반복 실습하고 관련 공구와 부품을 구입했다. 이제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 싶어 자전거 좀 탄다는 옆의 부장에게 말했더니 깜짝 놀라며 패드바지는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얘기라 그게 뭐냐고 하니 그 바지 안입고 자전거를 장시간 타면 엉덩이가 다 까진다고 하기에 급히 고무달린 자전거 속바지를 구입했다. 그렇게 호기롭게 출발을 했는데 잠실을 지날 즈음 타이어가 펑크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배운대로 즉시 타이어를 교체하고는 다시 출발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 다녀온 서울-부산간 자전거 종주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할 수 있는데서 시작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역시나 봄은 자전거 타기에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