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자신이 살았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 “선생님, 이번 총회에 나오시는 거죠?” 작년에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읽는 모임에 참여했다가 모임을 진행하시는 소설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이 분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알던 상식에서 좀 벗어난 분이셨기 때문이다. 대개 밝은 성격의 글을 쓰는 여성분들은 회의를 주관하거나 모임을 이끌게 될 때 주로 자신의 말이나 주장을 많이 해 회의를 잘 이끌지 못한다. 그런데 이 분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독서 모임을 적절한 시간 배분과 지나치게 말이 많은 분에 대해서는 무안하지 않게 발언을 제지시키는 등 소설가들이 갖출 것 같지 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임에서 그런 리더들을 만나면 일단 안심이 된다. 회의나 모임의 진행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아서 참여자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분의 소개로 ‘기적의 협동조합’이라는 곳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전문 작가들이 모여 도서관이나 문화교실 같은 곳에서 글쓰기 모임을 이끌기도 하고 작가 교류도 확대하는 등 글쓰기로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를 가진 단체였다.
퇴근 후 총회가 열린다는 대학로를 찾아갔다. 위치를 알려 달라고 하니 달랑 주소 하나만 주어 행사장 주변을 제법 헤매었다. 회사의 정밀한 행사 준비와 비교하니 슬쩍 웃음도 난다. 식순에 맞춘 조촐한 총회를 마치고 근처 일본식 술집에 들러 뒤풀이를 했다. 나는 첫 참석이고 어색할만한데도 글쓰기와 책, 교육이라는 공통된 화제 덕분에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이문재 시인이라는 분이 합류했는데 꽤나 유명 시인이기도 했지만 이 분 얼굴이 낯이 익었다. 알고 보니 작년에 메타버스 배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인물화 작가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며 스케치한 얼굴이었다. 본인의 얼굴이 그려진 연필 초상화를 보여주니 깜짝 놀라 한다. 신기하게도 인연이 이렇게도 닿나 보다.
지금 나의 세계를 바꾸고 싶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져야 한다. 지난 30년이 넘도록 직장의 인연만으로 채워졌던 나의 인간관계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점점 재미도 있고 흥미롭다. 은퇴 후 가지려는 세 가지 큰 기둥인 글과 연관된 리터러시 능력, 국내외 여행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테마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사뭇 기대도 된다. 다음 달엔 현재 설립 진행 중인 인터넷 신문사와 다른 국책 연구기관, 대학들과 함께 정책 포럼을 하나 개최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맞물려 우리의 북방정책에 관한 긴급 점검이 주제인데 꽤나 비중 있는 행사가 될 예정이다. 직장 다니면서 그 일을 어떻게 하냐고 하겠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일하는 방식이 비대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익숙한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도입해 전문적인 일은 크몽 같은 곳에서 전문가를 섭외해 맡겨버리고 일정별 결과물을 카톡이나 메일로 받아 검토하고 넘기는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용은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에서 대고 나는 전체 상황만 조율하고 있다. 이 모두가 그간 직장에서 배운 일머리를 돌리는 방식 덕분이다.
만일 누군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하소연한다면 나는 이런 조언을 할 것 같다. 먼저 당신이 가고 싶은 세계에 이미 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 그리고 그곳의 일이 당신에게 맡겨질 때 기꺼이 맡아라. 결국 나의 세계는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