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뉴기니 제도 일부에서는 ‘쿨라’라는 풍습이 있다. ‘쿨라’는 2종류의 ‘바이과’라 불리는 물품을 교환하는데 붉은 조개목걸이(소울라바)와 흰 조개 팔찌(무와리)이다. 그런데 바이과는 오직 다른 바이과와만 교환 가능하며 교환된 바이과는 1-2년 내에 다른 섬의 상대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섬들이 떨어져 있다보니 쿨라가 일어날 때 다른 물품들의 교역도 함께 일어난다. 이 풍습이 이루어지는 범위는 상당히 넓어 수백킬로 안의 섬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다.
섬 원주민 사이의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옛날로 돌아가 보자. 내가 살고 있는 섬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양은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근 섬과 교역을 하고 싶은데 무작정 찾아 갔다가는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과를 그 섬의 영향력 있는 자에게 건네고 환심을 산 뒤 가져간 물건들과 교역을 하였을 것이다. 교역은 범위가 넓고 빈번 할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바이과를 받았던 이는 2년 안에 멀리 떨어진 섬으로 다시 전달하러 떠나야 한다는 규칙도 정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과를 전달하는 방향에는 원칙이 있다. 붉은 조개 목걸이(소울라바)는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고, 흰 조개 팔찌(무와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이것이 많은 섬에 흩어져 살던 원주민간의 교역 방식이었다고 한다. 교환할 물건만 가지고 가면 안되고 쿨라 의식이 있은 후에야 정식적인 교역이 이루어 졌나 보다. 바이과는 오직 교환의 가치만 있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하나의 명예를 받은 것이 된다. 그리고 그는 그 바이과를 다른 섬에 전달하기 위해 카누를 타고 다시 위험한 항해를 떠나게 된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문화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선물의 기원이라고 본다. 사실 조개껍질로 만들어진 목걸이나 팔찌 그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쪽 섬에서 저쪽 섬으로 카누를 타고 위험한 항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항해를 통해 섬들 사이의 전체적인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오늘날 올림픽에 참여한 선수가 받아든 금메달을 똑같이 만들어 일반인에게 주었다고 그 사람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선물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우리가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면 된다. 살기 힘든 원시시대에는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낯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했을 것이고, 그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을수록 서로에게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여기에 매개되는 것이 선물이다. 그래서 선물은 과정이 들어가야 한다. 길을 가는 낯선 사람에게 선물이라며 상자를 건네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거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이다. 이처럼 선물은 어떤 스토리와 과정이 담겨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선물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