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휴대폰이 좀 이상해졌다. 카톡을 터치하면 노란 화면만 보이고, 네이버를 터치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돌아간다. 버벅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걸로 보아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나 보다. 올해로 6년째 접어든 아이폰 7이다. 그래도 당시엔 최고의 사양으로 128기가의 저장용량을 자랑하고 여전히 10기가의 용량이 남아있지만 앱을 구동할 때마다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제 바꿔야 하나 싶어 새로운 아이폰 사양을 검색했다. 스마트 폰이 출시된 이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을 몇 차례 오가다 이제는 아이폰으로 거의 정착하게 되었다. 유료로 깔아 놓은 어플이 점점 늘어나고 비슷하긴 하지만 손에 익은 스마트폰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 익히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지금 아이폰을 구입한다면 아이폰 13 시리즈와 보급형인 SE가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리면 아이폰 14가 출시된다고도 한다. 기기를 바꾸는데 굳이 새로운 모델을 기다리다 구입하는 편은 아니라서 네 종류의 아이폰 13 시리즈와 SE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군대의 보급품처럼 한 가지 사양만 있다면 참 편할 텐데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때로는 스트레스를 준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한 가지다. 선택하고 나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한 번 바꾸고 나면 꽤나 오래 사용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 골라야지라는 마음이 선택을 더 망설이게 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망설임이 좀 덜한 편이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이후 벌어질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고부터다. 그 후에는 다른 것과의 비교보다는 내가 선택한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사실 휴대폰 하나 선택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고장 나지 않은 이상 싫증 나서 바꾸는 경우는 없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라 그냥 이전과 비슷한 것을 고르면 될 일이다. 휴대폰이 안면 인식을 하고 카메라 렌즈가 많아 화질 좋다는 것이나 화면 크기가 크고 작고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래도 6년 정도 지났으니 속도든 뭐든 기기는 더 좋아졌을 것 같다. 그래서 고른 것이 보급형 모델이다. 크기는 지금의 것과 같지만 사양은 더 좋아졌고 저장 용량은 두 배이다. 가격도 지금의 휴대폰을 구입하던 때 보다 더 싸졌으니 여러모로 땡큐다. 게임을 즐기는 편도 아니라서 이 정도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현대인의 소비기준은 비교에 있다. 예전에 비해 더 좋은 것, 남이 가진 것에 비해 더 나은 것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형태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저자가 소개한 일본의 한 명망 있는 변호사의 사례인데 이 분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우유나 식품을 고를 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고른다고 했다. 그 이유는 모두에게 좋아서라고 한다. 가게 주인에게는 유통기한이 경과되면 폐기해야 하니 손해고, 폐기된 식품은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킬 것이니 안 좋고, 자신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가져왔으니 다른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긴 것을 가져가게 되니 좋다고 했다. 소비가 비교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끝없는 소유의 욕망만 남게 된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도 인간들의 절제되지 않은 소비가 낳은 환경파괴가 원인이라고 한다. 개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전체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딜레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