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배터리 충전 상태를 보니 100%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든든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휴대폰의 100% 다음은 99%가 되고 만다. 휴대폰 배터리 잔량을 100%로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디 휴대폰 배터리만 그럴까. 세상의 모든 이치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이를 두고 불가(佛家)에선 무상(無常)이라 했다. 유발하라리가 무상을 “Everything is Changed.” 로 번역을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세상의 이치가 이러한데도 우리는 100%가 안되면 100%를 채우려 하고 100%에 도달하면 이번에는 100%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100%로 계속 유지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충전코드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휴대폰의 휴대기능을 포기하면 100%로 유지할 텐데 그러면 휴대폰은 더 이상 휴대폰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에베레스트산을 올랐던 등반가에게 정상을 오른 느낌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답변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정상 등정의 기쁨에 환호도 지르고 주변을 보며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그 시간이 불과 15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다음 드는 생각은 ‘큰일 났다. 이제 어떻게 내려가지.’ 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랐는데라며 정상에 계속 머무른다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이제는 내려와야 한다. 그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지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오래된 일이다. 당시 은행업이 주 업무인 회사에서 특이하게도 보험설계사(FC) 지점장직을 꽤 오래 맡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는 제일 높은 분이 지역본부장이었는데 이 분들은 거의 말년에 부임하여 1-2년마다 교체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교체될 때마다 지점의 40명 정도 되는 설계사들을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식사자리를 함께 하곤 했는데 신임 본부장의 인사말은 대부분 ‘열심히 하세요. 제가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 행사가 해를 걸러 반복되다 보니 하루는 연세 드신 한 설계사분이 나에게 귀속말로 물었다.
FC : 지점장님, 저 양반은 얼마나 있다 가능교?’
나 : 한 1-2년이겠죠.
FC : 그럼, 그만 두면 뭐 하능교?
나 : 글쎄요, 대부분 저 자리가 마지막 자리이니 퇴직하고 집에서 쉬시겠죠.
FC : 그렇구나. 나는 이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하도 자주 바뀌서 물어봤어요.
나 : OO님이 훨씬 더 능력자세요. 저분은 회사에서 부여한 직위로 저 자리에 계시고 더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OO님은 본인의 능력으로 시간 마음대로 활용해 가며 일하고 싶을 때까지 하시잖아요.
FC : 그렇지, 나는 내 고객이 맨날 나를 찾는다. 저 양반보다 내가 더 낫네.
그 설계사분은 아저씨가 공직에서 은퇴하셨고 아드님도 해군 대령으로 근무 중이라 안정된 연금으로도 생활 가능한 분이셨다. 단지 노는 것보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쉬엄쉬엄 영업을 하며 소득도 꽤 가져가시는 분이었는데 당시 1-2년 있다 퇴직하실 지역본부장과 묘한 대조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내가 지점장직을 떠난 후에도 계속 근무하시다가 70세가 넘어 그만두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인사철이다. 최근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인사가 났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나는 그때 그 대화가 생각난다. 옛날 그 지역본부장들은 자신이 사준 밥을 한 그릇 먹고 있는 그 설계사분들이 사실은 자기보다 더 생존력이 강했던 사람들임을 알고 있었을까. 회사원은 회사를 벗어나면 갈 곳이 없지만 자신의 영업력이 있는 분들은 서로 모셔가는 게 현장이다. 나는 회사의 높은 직위에 있는 분들보다 자신의 영업력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소득을 창출해 가는 설계사들이 더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회사의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능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