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참 편안하다. 아침에 커피를 건네주던 옆의 팀장이 이제 9개월 정도 남으셨는데 은퇴를 맞이하는 심정이 어떠냐고 묻기에 아직 실감을 못하겠다고 했다. 9개월 후에 닥칠 일이니 실감을 못하는 건지 은퇴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날까지 정상처럼 출근했다가 그다음 날 툭하고 떨어질 예정이다. 직장이란 내가 오너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물러나야 할 곳이다. 다만 너무 오래 익숙해져 영원히 다닐 것 같은 착각을 할 뿐이다. 어떤 대상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려면 내가 그곳에서 벗어나 내가 머물던 곳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다. 평일날 별일 없이 휴가를 내고는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출근하는 동료들을 본 적이 있다. 익숙한 얼굴들이지만 낯선 사람들처럼 보인다. 내가 그 속에 없기 때문이다. “꿈 깨!”라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제삼자의 눈으로 나에게 익숙한 것을 지켜보는 방법은 그런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낯설게 바라보려면 나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회사 안에서 나 스스로를 낯설게 바라보기는 어려우니 장소라는 물리적 위치를 달리하여 볼 수도 있고,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가까운 화장장에 가서 한두 시간 머물러 보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게 있다. 나와 관계있는 분들의 죽음을 낯설게 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하나씩 밀려들어가는 모습을 멀찌기서 보노라면 새삼 삶의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러기에 남은 생의 소중함도 보게 된다.
서울역으로 친정에 다냐온 아내를 마중 나갔다.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병원에 계신 장모님을 잠시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환자 면회가 금지된 상황이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스치듯 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가는 내내 침울하게 말이 없다. 아내는 장모님이 날로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영원히 젊음으로 살 것 같지만 모두 한 때인 시간들이다.
아침 산행길에 가벼운 비가 내렸다. 화사함을 자랑하던 벚꽃과 목련의 꽃잎이 바람과 비에 떨어져 산행길을 하얗게 장식했다. 아직 붙어있는 꽃과 떨어진 꽃들의 차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다. 모든 꽃들은 떨어지고 만다. 결국 떨어질 꽃이라고 꽃을 즐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간직할 수 없기에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원래 소중한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은 온전히 함께 하자. 그것이 어느 광고의 멘트처럼 순간을 영원히 할 수 있는 방법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