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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수산시장을 다녀오며

by 장용범

새벽에 수산시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는 새벽 수산시장이었다. 요즘 러시아산 대게가 싸다기에 한 마리 살까 싶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서울의 대로는 조용하고 적막했다. 하지만 이 길도 불과 몇 시간 후면 출근길 교통체증으로 붐벼댈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을 때 발생한다. 어제 직원들과 대화 중에 지금의 대통령 당선인이 사는 위치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바로 그 장소라고 했다.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사망자만 502명, 부상자 937명으로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건물 붕괴 사고였다. 저녁 쇼핑 시간대인 오후 6시경에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더 컸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시간이 지나 아파트가 들어섰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가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한 직원은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아래에 502명의 죽음을 깔고 있으니 기가 참 셀 것 같다면서 그래서 대통령도 나오나 보다고 했다. 그냥 다른 시간, 같은 장소일 뿐이다.


도착하니 경매가 한창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활어와 온갖 해산물들이 새벽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펄떡이는 생선에 내려치는 날카로운 갈고리는 삶은 죽음을 먹고 산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다. 이 곳은 보통 상자단위로 판매를 한다. 싸긴 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구입해도 처치곤란이다. 적당한 자제력은 여기서도 필요하다.이제 새벽 수산시장도 몇 차례 다니다 보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곳에서도 물건 사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 먼저 경매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소매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대강 알아본다. 그래야 오늘의 경매가격이 싼지 비싼지 가늠이 된다. 대게를 사러 갔는데 오늘의 시세는 대게보다 킹크랩이 더 싸게 나온 것 같았다. 먼 바다에서 잡혔을 킹크랩 한 마리가 서울의 수산시장 한 켠에서 나를 만났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이다. 킹크랩만 사오기엔 좀 아쉬워 시장을 기웃거리다 참가자미와 골뱅이를 한 상자씩 더 구입했다. 그렇게 다 구입해도 10만원 안팎이었다.


조용한 새벽녁, 집으로 오는 길에 드는 생각이 있다.나는 오늘 대게를 사러 갔으나 킹크랩을 샀다. 러시아산 대게가 많이 싸졌다는 뉴스를 보고 새벽시장을 찾아갔지만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아니었다. 만일 내가 대게를 사야 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면 평소보다 싸게 나온 킹크랩이 안 보였을 것 같다. 그런 현상을 자기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이렇듯 자기생각에 갇혀지낼 때가 많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의 일이나 사람, 외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에서 좀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상을 짓지마라, 상에서 벗어나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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