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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재미있게 놀았다

by 장용범

“사무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에 오후 내내 긴장되었던 상황이 해제되었다. 어제 국내의 유라시아 전문가들을 모시고 진행했던 “우크라이나 위기와 신북방정책 전망”이라는 정책 세미나를 마쳤다. 거의 4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행사였고 세미나를 듣는 플로어의 좌석도 거의 채워져 나름 성공적인 행사였다. 규모로 치면 그리 큰 행사는 아니었다. 지금의 직장에서도 크고 작은 여러 행사들을 치러본 터라 행사의 기승전결 정도는 체득하고 있지만 나에게 이번 행사의 의미는 좀 달랐었다. 30년 넘게 직장의 일원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내가 다른 단체의 실무 책임자가 되어 치러낸 행사였기 때문이다.


받아 든 명함들이 교수와 박사, 연구원장, 전직 외교관 등 이제껏 직장생활 중에 받아 든 명함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일일이 찾아가서 만난다고 하면 각자의 바쁜 스케줄로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었다. 참석자들 몇몇 분과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대화의 내용들이 흥미롭다. 국내 주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포함해서 40여 개국에 불과하다는 것, 경제제재로 러시아가 곧 무너질 것처럼 보도하지만 1분기 러시아의 경제는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오히려 더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제재에 동참했다고 여겼던 유럽마저 러시아 산 원유 49%, 기타 다른 원유를 51%로 섞어 러시아산 원유가 아닌 것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등은 이제껏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더구나 미국의 경제제재가 강해질수록 러시아와 중국, 러시아와 인도가 더 강하게 결합되는 양상을 보여 유라시아의 새로운 힘의 균형이 생겨나고 있고 경제제재의 핵폭탄이라는 달러 기반의 SWIFT 제재도 처음에 비해 효과가 미미해졌는데 러시아는 이번 사태로 블록체인 기반의 SWIFT 2.0 시대로 넘어가 대외의 대금 결제에 큰 어려움이 없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최근 한국의 국회가 우크라이나 젤린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 기회를 부여한 것은 국익을 위해 정말 해선 안될 일이었다고 했다.


요즘은 일과 개인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전에는 퇴근을 해도 묵직하게 누르는 것이 회사의 일이었는데 최근에는 회사 건물만 벗어나도 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신 관심을 둔 여러 활동들에 참여하며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재미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일에 대한 관점이 좀 바뀌었다. 이전에는 일하기 위해 쉬었다면 이제는 놀고 쉬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참 다른 세상이 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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