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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비용이 들지 않으면 친절한 법이다

by 장용범

“비용이 들지 않으면 친절한 법이지.”

파친코라는 드라마에서 야쿠자 보스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다. 드라마를 진득하게 보는 편이 아니라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 대사만큼은 꽤 여운을 남긴다. 비용이란 나에게서 무언가가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나의 노동이든 간에 무언가가 지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비용을 들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효용을 기대한다. 비용 대비 효용이 같거나 더 큰 수준이면 만족하겠지만 비용을 들인데 비해 돌아오는 게 적으면 불만을 가진다. 이는 당연한 거다.


그렇다면 비용을 들이지 않는 최고의 단계는 무언가를 공짜로 얻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것도 무조건 그렇지만은 않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작은 에피소드 격인 장면이 있다. 주인공 도깨비가 환생해서 만난 전생의 부하를 회사에 합격시키고는 비서를 통해 선물을 준다. “회사가 제공하는 집입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자동차입니다.” 받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상하다. “저한테 왜 이리 과분한 걸 주시는지?”라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면접을 너무 잘 보셔서”라고 했다. 역시 드라마 속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받을 때 내가 그만한 대가를 치렀는지 먼저 떠 올리게 된다. 그리고는 들였던 비용에 비해 너무 과분한 것을 받게 되면 좋은 마음보다는 의심부터 하게 된다. “저한테 왜 이리 과분한 걸 주시는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 아픈 기억의 한 켠이 있다. 내가 아직 신입 행원이었을 때 이야기다. 당시 정년퇴직을 얼마 안 남긴 고참 과장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에게는 형님이라 살갑게 부르며 대하는 당좌 거래처의 한 사업가가 있었다. 햇수로 알고 지낸 것만 해도 10년이 넘은 아주 막역한 사이 같았다. 당시 과장님은 그분의 개인보증까지 설 정도였는데 어느 날 이 사업가분이 홀연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당시 지점의 대출도 상당했고 당연히 과장님의 근심도 깊어졌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사업가는 사람 좋은 그 과장님에게 자동차까지 선물했다고 한다. 결국 그 과장님은 연대보증 때문에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수십 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해야 했다. 내가 들였던 비용보다 훨씬 큰 무언가를 받는 것은 미래의 재앙이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그 야쿠자 보스의 말처럼 비용도 들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딱딱하게 굴 이유는 없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세상에 친절하게 다가서는 경우가 있다. 호구일 수도 있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차이가 궁금하긴 한데 그건 비용을 들인데 비해 돌아오는 게 없어도 섭섭하지 않은 마음이 기준이 될 것 같다. 무언가에 대해 진심이라면 비용을 들이는 과정에서 이미 회수를 하고 있는 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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