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19.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

by 장용범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의 마음이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울 땐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지만 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움에 넘칠 땐 지나가는 개도 웃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바꾸는데 힘을 쏟는 것이다. 지난주 점심을 먹고 들렀던 테이커 아웃 커피점에서 예전 팀원을 만났다. 지금은 텔레마케팅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반가운 마음에 점심 날짜를 잡았었다. 평소 조용하고 부드러운 심성이라 영업과는 좀 거리가 먼 친구지만 수 년째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여겼다.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가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매니저들까지 함께한 자리여서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며 자리를 끝냈다. 식당을 나오는데 머뭇거리더니 매니저들을 보내고 좀 상의드릴 일이 있다고 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스스로는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몇 년째 승진이 안 되어 괴롭다는 얘기였다. 정도가 좀 심했는데 지점이 본사 근처인데 점심시간에 사람들을 만날까 봐 지점 안에만 머문다고 했다. 지난 주도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갔는데 우연히 나를 만난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대강 어떤 심정일지 알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냐고 물으니 정말 그러고 싶다 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나 : 여러 상황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면 일단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치자. 그래도 아직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처지이니 새로운 일자리는 구해야 하지 않겠나?

*지점장 : 그렇습니다.

*나 : 그러면 사직서를 내고 지금부터 구직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자. 세상에는 여러 회사들이 있으니 그중의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인데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회사도 포함되었다고 여기자. 그리고 자네는 철저하게 구직자의 입장이 되어 여러 조건들을 비교해 보는데 급여 수준, 근무조건 등등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가 냉철하게 조건들을 따져보자. 그런 상황이라면 자네는 어떤 곳을 선택할 것 같은가?

*지점장 : 아무래도 이 직장의 조건이 가장 나을 것 같습니다.

*나 : 그럼 되었네. 오늘부터 지금껏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얻었다고 여기고 근무해 봐라. 그리고 회사에 너무 기대하지 마라. 기대하는데 안 되니까 괴로운 것이다. 이곳은 나의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면 지금보다는 기대치가 많이 낮아질 것이다. 나의 경우지만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으니 오히려 고마운 게 많이 보이더라.


우리는 그렇게 점심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무언가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별로 원하는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그다지 믿지 않으니 의지도 않는다는 것도 되는데 홀로 우뚝 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일 전달되는 ‘스님의 하루’라는 글에 언뜻 눈이 가는 글귀가 보였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상황이면 하면 되고,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상황이면 받아들이면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