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조화는 늘 따라다니는 화두이다. 현실의 삶에만 매몰된다면 경상도 말로 늘푼수가 없고 그렇다고 이상만 좇는다면 구름 속에 사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다. 그래서 바람직한 삶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적절한 교감이 필요하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현실의 팍팍함에 밀려 꿈이나 이상은 옅어지고 어느 날 문득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지’라고 회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드는 시기에 여전히 꿈과 이상을 지니고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직 철이 없거나 아니면 여전히 젊다는 것이다. ‘꿈(이상)에다 기한을 정하면 목표가 되고, 목표를 기간으로 잘게 나누면 계획이 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꿈(이상)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중년 이후에 추구하는 꿈이나 이상은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 나이 되도록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경험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만큼 성장했을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인생은 참 허무하게 끝을 맺기도 한다. 최근 영화배우 강수연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김지하 시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인간의 생은 언제 마감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강수연 배우는 나와 동갑내기였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중년이라고 해도 남은 생애 동안 꿈을 좀 가져보면 어떨까. 중년 이후의 꿈은 꼭 성취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 의미를 추구하기 가장 좋은 나이대가 중년이다.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품을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서도 밀려날 시기이니 남는 것은 시간뿐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그러니 이 모든 여건을 감안해 보면 자신의 꿈을 가지기에 얼마나 좋은 시기인가. 먹고살기에 급급한 수준만 아니라면 자신을 성찰하거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도 관심을 가질 법하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아주 잘 나가던 선배들도 은퇴를 하고 나면 평범했던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의미는 다른 사람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찾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 영향받지 말자. 그냥 내가 좋으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침에 아내와 담배 이야기가 나왔다. 어렸을 때 어른들 담배 심부름을 자주 했다면서 기억나는 담배 이름과 가격대를 줄줄 말했다. 새마을, 거북선, 한산도 , 환희, 청자, 백자 등등. 담배 값이 50원에서 100원, 200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담배값을 모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에게 담배값은 큰 의미가 없다. 이처럼 의미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다. 점점 시간이 많아질 중년 후반에는 꿈이나 이상을 추구하며 의미를 구현할 만하다. 아무리 봐도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수연 배우나 김지하 시인처럼 우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