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뜻이 있는 자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어제 북방지역 외교관 두 분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한 분은 대학원 동기분이고 다른 한 분은 내가 관여하는 포럼에서 만난 분인데 알고 보니 외교부의 친한 선후배 사이셨다. 자리를 파하고도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이란 말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수년 전 블라디보스톡 여행에서 대륙의 광활함을 느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하는 기차역에서 내 앞을 지나가는 안중근의 모습을 상상했던 전율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후 머릿속에는 ‘대륙’이라는 두 글자의 잔영이 선명하게 박혔지만 내가 마땅히 할 일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모스크바까지 7박 8일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나 타고 여행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먼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다 그 항목의 달성을 위해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적어 보세요. 그리고 먼저 그것을 하세요.’ 얼마 전 들었던 N 잡러 특강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행 후 내가 했던 일이 그 강사의 조언과 일치했다. 대륙 여행 한 번 다녀왔다고 당장 내가 대륙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어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학원 등록을 한 것이다. 학언은 꽤 오래 다녔지만 머릿속에 남은 것은 별로 없다. 그냥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나 보다. 서점에 가면 러시아나 유라시아 또는 대륙이라는 제목의 책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가까운 러시아, 다가온 유라시아’라는 책을 만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당시 우즈벡에 있는 한국의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저자와 페이스북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그 후로 만난 책이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유라시아 견문’이었다. 나중에 저자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알게 되었지만 그 책은 저자가 교수 임용을 앞둔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무려 3년의 기간 동안 대륙을 누비며 기록한 인문학 기행문이었다. 책을 읽다 감동적이면 어떤 식으로든 저자에게 연락을 하거나 강연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그렇게 저자가 강사로 있는 ‘대륙 학교’를 알게 되었고, 북방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교육과정 중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블라디보스톡과 우수리스크, 북중러 국경지대인 크라스키노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대륙과 관련된 만남과 활동들이 이리저리 이어지더니 이제는 은퇴시점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유라시아 평론’이라는 인터넷 신문에 관여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지난 과정들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뜻이 있는 자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무엇이든’이라고 하니 너무 오버한 것 같지만 어떤 것에 뜻을 둔 자는 그 생각이 늘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그 뜻과 연관 지어 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 두 분의 외교관과 식사를 하며 국내외 정세에 관한 생생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도 감명 깊었지만 그런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만들어라.’ <어린 왕자>를 쓴 생떽쥐베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나는 블라디보스톡 여행과 북중러 국경지대의 넓은 지평선을 보며 대륙에 동경심을 품게 되었고 대륙과 관련된 활동들을 찾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나이 50대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