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 검은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by 장용범

바쁜 토요일이었다. 오전은 두물머리에 지역문인협회 야유회 행사를 가야 했고, 오후엔 성공회대에서 주한 키르기스스탄 대사를 모신 인문강좌를 준비해야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저녁 10시 반에 들어왔으니 거의 녹초가 된 하루였다. 그래도 마음은 풍요로웠다. 양쪽의 모임에서 역할을 맡다 보니 빠질 수 없는 위치였다. 은퇴 후에 할 일이 없다는 말은 돈을 안 주면 일하기 싫다는 것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일은 특이한 속성이 있다. 물질적 보상과는 상관없이 나의 역할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하는 것으로도 만족감을 준다. 뭐랄까? 어떤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일이다. 적어도 나로 인해 주변이 좀 나아졌다면 그게 보람이다.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물질적 보상 없는 일에 그리도 적극적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달리 보면 이건 이기적인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활동이긴 하다. 결과가 없는 일은 과정이 제 아무리 좋아도 의미 없다는 관점,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도 변하는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개인적인 경험들을 하고, 주변의 좋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다른 시도를 하게 되었다. 모든 삶의 궁극적 결과는 죽음이니 과정인 삶이 의미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상은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나의 활동을 통해 느끼는 충만감도 보이지 않는 보상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우주공간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이라는 것이 있다. 수조 원대에 이르는 아주 비싼 망원경이다. 1990년 이 망원경을 우주에 쏘아 올리고 NASA는 눈에 보이는 별과 행성, 은하를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93년 로버트 윌리엄이라는 사람이 허블 망원경의 총책임자가 되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인간이 만든 눈으로 우주의 빈 공간이 보고 싶어졌다. 곧이어 엄청난 비난이 뒤따랐다. 아직 관측 못한 눈에 보이는 별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 비싼 망원경으로 허공을 보는데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단호한 결정으로 허블망원경은 우주의 빈 공간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멀리 보기 위해 그 큰 망원경으로 바늘귀만큼의 우주공간을 관측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경이로웠다. 바늘귀 크기의 검은 공간에서 별들의 집합인 은하가 무려 3,000개 정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태양 같은 별이 아니라 태양 같은 별들의 집합인 은하가 3,000개 발견되었다는 얘기다.


인간은 좀 복잡한 존재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은데도 1인 시위한다며 혼자 뙤약볕에 서있다. 자신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을 것 같은데도 남을 돕는 일에 열과 성을 쏟는다. 어쩌면 그들은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의 검은 공간을 보려고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돈, 명예, 인기, 권력 등이 눈에 보이는 별과 행성, 은하라면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오직 결과와 성과위주의 삶을 지향해 온 내가 처음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우선하는 삶을 시험해 보고 있다.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익숙한 결과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그런 삶은 너무도 오래 살아왔던 방식이기에 지금은 그냥 과정을 중시하는 다른 가치의 삶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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