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마트 폰 덕에 요즘은 TV 앞에 앉을 일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동물의 왕국’을 보게 되었다. 이런 모습도 매우 드문 현상이긴 하다. 어릴 땐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채널 주도권을 두고 실랑이도 했지만 이제는 휴대폰으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번 ‘동물의 왕국’에서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새끼 네 마리를 키우는 어미 치이타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스토리텔링에 입각한 내레이션을 야생 동물들의 행동에 적절히 매칭 한 덕에 몰입도를 한껏 높여 주었다. 제작진이 대단하다 여겼던 것은 야생의 동물을 대상으로 어떻게 저런 세세한 장면까지 찍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감탄이 절로 났다.
스토리는 이랬다. 초원에서 어미 치이타가 사자의 위협 속에서 어린 새끼들을 숨기면서 키워낸다는 것이었다. 어미가 사냥을 나간 사이 숨겨둔 두 마리의 새끼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아내는 연민의 마음에 ‘좀 살려두지’라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인간의 세계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야생에서는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사자가 새끼 치이타를 물어 죽이는 건 나중에 같은 먹이를 두고 경쟁하게 될 포식자를 하나 없앤 면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이나 우리의 역사서에는 권력에 도전한 역적은 삼족을 멸했다는 기록도 있고, 시장이라는 한정된 먹이를 두고 국가 또는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형제들끼리 부모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이제 식상한 이야기가 되었다. 동물과 다른 것은 법과 제도 안에서 좀 세련되게 다툰다는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더 잔인할 수도 있는데 제 아무리 사자라 해도 배가 부르면 앞에 토끼가 뛰어다녀도 시큰둥하게 보지만 인간은 종교나 사상,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종족을 말살시키는 일도 자행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상당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코로나 시국이 3년째 이어지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에 식량과 에너지 위기를 불러왔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으로 풀었던 통화는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무리하게 빚을 내었던 개인들은 금리인상에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이 위기는 해결방법이 없지는 않다. 개인이나 개별 국가들이 저만 살겠다고 하면 자원이 풍부한 몇몇 국가들만 살아남겠지만 다 같이 살자는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면 그나마 살길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기심이 과연 협력을 가능하게 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편 가르기가 심화되어 또 다른 전쟁의 불씨를 댕기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외교가에선 ‘아무리 값비싼 외교라 해도 값싼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외교를 통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인데 지구 곳곳에는 나만 살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