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을 참고 삼아
김만중의 구운몽을 대학원 과제의 텍스트로 선택했다. 학창 시절 책의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직접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구운몽은 꿈에서 겪은 일을 소설의 형식을 빌린 몽류 소설이다. 시선계에 살던 성진이라는 스님은 그의 스승 육관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왕을 만나고 오는 길에 아름다운 팔선녀를 만나 놀게 된다. 그는 절에 돌아온 뒤로도 인간이 좇는 욕망에 번민하다 스승으로부터 크게 혼나고는 속계로 내쫓기게 된다. 성진은 속계에서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는데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다는 내용도 없으나 대장군이 되어 적을 물리쳤고, 조정에 들어와서는 승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그런 중에도 전생의 팔선녀가 환생한 미인들과 온갖 연애질을 일삼더니 팔선녀 모두를 자신의 처와 첩으로 삼는다. 이들 팔선녀들은 서로 싸울 법도 한데 너무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 이리 보면 양소유는 인간이 원하는 모든 욕망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늙음이 찾아오고 어느 생일날 밀물처럼 허무감이 밀려와 눈물짓는다. 그때 그의 스승 육관 대사가 다시 나타나고 그가 이룬 모든 욕망의 성취가 사실은 인생이라는 기나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오늘날의 스토리를 변화시켜 보자.
태어났더니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다. 위로 형들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기업을 물려받았다. 얼마나 똑똑하고 영민한지 물려받은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행복한 삶인 줄 알았는데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유일한 아들은 이혼을 하고, 딸 하나는 자살을 했다. 나머지 딸 마저 이혼을 해서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덜컥 뇌경색으로 쓰러져 자신이 주인으로 있던 큰 병원에서 수년간 코마 상태로 있다가 사망했다.
또 이런 스토리는 어떠한가?
어려운 시절 군사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 경제성장을 이끌며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다 아내가 자신 대신 저격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외로웠기에 말년에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그러다 오랜 기간 함께 했던 부하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대한민국은 이상하게도 대통령이 되면 끝이 좀 비극적이다. 임기를 마치면 본인이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감옥에 간다. 그도 아니면 자살하거나 이국땅에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두 가지를 욕망한다고 했다. 하고 싶거나 갖고 싶거나이다. 욕망의 카테고리는 거의 정해져 있다. 권력이나 명예욕, 색욕, 물욕 등이다. 요즘은 이것도 서로 통하는지 하나를 극적으로 가지면 나머지는 따라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왕이라 불렀는데 요즘 주변에는 왕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입고 사용하는 물건들이 조선시대 왕보다 못할 게 있겠는가. 그럼에도 더 많은 걸 욕망하고 있다. 욕망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구운몽의 주인공처럼 어느 날 우리는 욕망의 끝에서 허무를 느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