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 등고자비(登高自卑)

by 장용범

지금 나의 운은 어떤 상태일까?

김태규라는 명리학자가 쓴 ‘산다는 것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다가 어쩌면 나의 운은 상승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 의하면 상승기의 운을 가진 사람은 ‘고생을 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했다. 요즘 내 마음이 그러하다. 그러면 운의 하강기 마음이 궁금해진다. 책에는 ‘원하는 바를 성취했거나 또 그로 인해 이제 다시 천릿길을 떠날 생각이 없거나 그런 열정이 없는 상태’라고 적혀 있다. 결국 고생이 되더라도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상승하는 운으로 보는 것 같다. 일리가 있다. 지금껏 살아보면서 아무리 의욕을 가지려 해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좀처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상황은 별로 좋지 않지만 이런저런 의욕이 다시 살아나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운의 상승기에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이전과 다른 활동을 할 경우도 생겨난다. 아무튼 지금은 의욕이 나고 있으니 운의 상승기라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점집이나 역술원을 찾는다. 살면서 겪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이 언제쯤 지나갈는지, 이 사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 스스로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에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낸다. 그렇게 우주의 힘을 빌어 자신의 복을 구하려 하지만 일견 생각해 보면 이 우주가 한 개인이 돈 잘 벌고 높은 직위를 얻는데 자신의 힘을 쓸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뭔가가 이루어졌다면 자신의 운과 주변의 상황이 맞았던 때문이겠지.


젊을 적엔 운이란 것에 큰 믿음이 없었다. 자신의 노력 부족을 불운의 탓으로 돌리는 나약한 마음이라고 만 여겼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보니 운이란 게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간다. 돌아보면 무언가를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때가 있었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아도 이런저런 도움이 붙어 수월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오직 내 힘으로 해낸 것이라기엔 여러모로 낯간지러운 일들이 많다. 그냥 덕분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운은 15년 주기로 60년간 이어진다고 한다. 다만 그 시작점이 어떤 이는 봄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는 겨울에서 시작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데 다만 일평생 좋은 운만 타고 난 사람도 없고, 나쁜 운만 타고 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고 말고는 사람에게 달렸지만 그 일이 되고 말고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이 백번 애를 써도 안될 일은 안 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하늘이 어떤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사람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일단 복권을 사야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선수 생활을 17~18년 했는데 그중 90%는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우승을 했거나 좋은 경기를 했을 때 기쁨이 크지만 그건 몇 퍼센트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 몇 퍼센트 안 되는 순간 때문에 포기를 못하고 이어간 것 같아요.”


잘 되어도 고생, 안 되어도 고생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있어 수고롭고 고생스러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인생고(人生苦)라고 하지 않은가. 다만 고생을 했는데 이루어진 게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이다. 등고자비(登高自卑), 이 말은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한다 또는 높을수록 겸손하라 등의 해석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 말을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다. 높이 올라가 보면 스스로가 대단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럴 것 같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내려다보는 우주인에게 저 아래 지구에서 저 잘났다고 우쭐대는 인간이 보이기나 하겠는가. 높은 경지가 되면 그냥 스스로가 그리 대단하지 않음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가 보다. 운명 앞에 겸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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