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어느 스님에게 서울로 가는 길을 물었다. 스님은 동쪽으로 가라고 했다. B도 역시 서울로 가는 길을 스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서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걸 보던 제자가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똑같이 서울로 가는 길을 묻는데 A에게는 동쪽으로 가라고 하시고는 B에게는 왜 서쪽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스승이 말했다. “이놈아, A는 인천에 살고 있고 B는 강릉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 처한 곳이 다른데 어찌 방향이 같을 수 있겠느냐.”
법륜 스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사례이다. 사람은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그러니 A에게는 가능한 해결책이 B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서울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듯이 사람 살아가는 방식도 제각각임을 인정해야 한다. 허태균이라는 사회심리학자가 있다. 이 분은 한국인의 심리 연구에 대해 지명도가 높은 분인데 이 분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은 관계주의에 입각한 동질성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우리 학교 등등 ‘우리’라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런 성향이 빛을 발할 때도 있다. 해방된 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전쟁으로 완전 폐허가 되었지만 그 짧은 기간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피곤하다. 특히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하도록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관계중심형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피로 그 자체다. 이제 우리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취향대로 좀 지내고 싶다. 술자리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고, 주말 골프가 싫으면 빠져도 불이익이 없는 그런 조직을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 조직에서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등 서양에서 이번 코로나를 극복한 힘으로 한국의 공동체를 우선하는 집단주의 문화에 주목하고 있어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가치관이 이 시대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머물고 있는 개인들의 피로감은 어쩔 수 없다. 양쪽을 조화할 방법은 없는 걸까?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방도 같은 것 말이다.
다시 허태균 님의 조언이다. ‘설득하지 말 것’
상대를 설득하려는 중에 나와 다름을 알게 되고 거기서 갈등이 생겨난다.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말 일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느라 구성원인 개인들이 사라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너는 나와 같아야 한다는 설득하려는 마음은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사라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