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 감사합니다. 스님

by 장용범

법륜 스님, 안녕하세요.

스님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은 사람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는데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인생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다치진 않았지만 7초 안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뻔했던 자동차 사고와 두 번이나 차가운 수술대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던 경험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 않을 수 없더군요. 그때 이후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불교가 궁금해졌습니다. 조계사의 불교 대학과 경전 과정을 마쳤지만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에 아쉬움이 남던 중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질문자의 인생 문제를 촌철살인 같은 답변으로 깨우쳐 주시는 스님에게 금방 매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정토회 법당을 찾아 다시 2년 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불교대학만 두 번 다닌 셈입니다. 스님의 즉문즉설 중 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던 내용을 추려보았습니다.


자녀가 스무 살이 넘으면 신경을 끄라.

지금 제 아이들은 이십 대 중반입니다. 스님의 조언대로 아이들의 인생과 저의 인생을 분리해서 보게 되니 관계가 좋은 편입니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신경 끄라는 조언대로 아이들에 대해 나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쌓인 내 생각은 들려주지만 선택은 아이의 몫이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어른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취업과 결혼 등 인생의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저는 올해 은퇴를 해야 합니다. 걱정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의 지원에 대해서는 하면 좋겠지만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전 법당을 찾으신 법사님께 이런 문제를 상의드렸을 때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라는 이 한 마디가 참 명쾌하다 여겨집니다.


꽃을 좋아하면 누가 좋아요? 내가 좋지.

인간관계의 갈등을 이처럼 간결하게 풀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가 괴로운 법이죠. 상대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다르네라며 최소한 미워하지 않는 수준으로만 대해도 갈등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습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다는 나를 좋아한다고 한 적 없듯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게 다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지혜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혼했다 치고 재혼 상대를 구해 보자.

저는 이 조언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년 전 직장생활에 회의가 들어 고민하던 시절 스님의 조언을 약간 비틀어 보았습니다. ‘그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치자. 하지만 아직 나이가 있으니 다른 직장을 구한다고 할 때 지금의 직장도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두자.’ 결론은 지금의 직장만 한 곳이 없더군요. 그러자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 지금의 회사가 너무도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3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마음속으로 2년제 계약직원으로 회사와 나의 관계를 재정립하니 새로 입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회사를 대할 때 기대감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함이 크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꼭 다 올라가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산을 갈 때 꼭 다 올라가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정상을 향해 올라가지만 몸이 지치고 해도 기우는 상황이면 중간에 내려와야죠. 그래도 그만큼 올라갔으니 안 오른 사람보다는 나은 거예요.” 이 말씀으로 일을 도모하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안 되면 또 하면 되지 좌절할 일은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 꼭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할 일은 참 많다는 걸 받아들이게 됩니다.


커요? 작아요?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내 처지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죠. 스님의 조언으로 나에게 없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참 많이 가지고 있더군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다. 예쁜 것도 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불교의 공(空)의 개념을 이처럼 잘 설명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다만 할 뿐이다.

기대하는 바가 없으면 괴로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대란 욕망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포기한 걸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기대감이 없다는 것은 ‘다만 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결심을 하는 시간에 조금씩 정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어나야지 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 결심은 언제나 행동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다른 기대감 없이 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말이죠.


평생 나라 돈을 받았으니 이제 봉사 좀 하시죠

공무원으로 정년을 앞둔 이가 정년 후를 걱정하니 연금 받을 사람이 그리 걱정하면 다른 사람은 어찌 살겠냐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스무 살 넘겼으니 신경 끄고 남은 생은 그간 나랏돈 잘 받았으니 이제 봉사 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은퇴를 앞둔 나에게 적용하여 평생 잘 벌었으니 남은 기간 봉사 좀 한다 생각하고 일거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할 일이 엄청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드물지만 돈을 안 받고 할 수 있는 일은 널려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받고 춤을 추면 노동, 돈을 내고 춤추면 놀이’라고 하셨는데 노동과 놀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일을 대하는 자발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스님의 하루 일상을 SNS로 받고 있습니다. 모든 법문과 즉문즉설을 온라인으로 돌리고는 거의 농사꾼이 다 되셨더군요. 무리는 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말로써 가르치는 사람은 흔하지만 스님처럼 행동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드문 세상입니다. 말의 감동은 금방 사라지지만 실천을 통한 가르침은 여운이 오래갑니다. 스님, 늘 감사드립니다. 나무 불. 법, 승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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