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 프리랜스 용역계약

by 장용범

진행하고 있는 인터넷 신문의 이사장께서 인턴기자 채용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에 살짝 우려가 되었다. 예산도 부족하거니와 고용계약이 사용자 입장에서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알고 있어서다. 교수님이기도 한 이시장님 눈에는 그냥 어린 학생들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들도 엄연히 20대가 넘어 법률상 행위주체가 될 수 있는 위치들이다. 지인인 교수로부터 명문대 졸업생 A를 추천받았다고 하는데 일단 알겠다고 하고선 운영 방식을 고민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용관계는 아닌 것 같아 용역도급계약을 맺기로 했다. 요즘은 노동자의 권리가 대폭 강화되어 일반 아르바이트생도 계약관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용자 입장에선 고용을 더욱 꺼리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갑자기 고용주의 입장이 되어보니 무자식 상팔자란 말처럼 무직원 상팔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업을 하셨던 내 아버님이 직원 때문에 붉으락 푸르락 하시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다.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재원이기는 하나 교수님 눈에는 번역 수준이 좀 미흡한 감이 느껴지시나 보다. 그래도 가르치면서 함께 가자라는 생각이셨나 본데 최근 A가 샘플 과제 번역을 포함해 회의 참석에 따른 시급까지 요구하자 아예 질려 버리신 것 같다. 당초에는 아르바이트로 일을 맡기겠다고 하시기에 내가 반대했었다.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안 된다고 주장해 번역 편당 얼마라는 식으로 용역계약을 맺은 것이다. 현직 교수기도 하신 이사장님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요구하는 A가 못내 서운하신가 보다. A를 추천한 지인 교수에게 항의하겠다는 분위기여서 내가 말렸다. 그 졸업생은 아무런 잘못한 게 없어서다. 당장 그만두게 하라는 말씀도 하시기에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도급계약은 1년으로 약정했고 정당한 사유 없는 계약해지는 불가하다고 말씀드렸다. 다만, 용역계약이니 만큼 번역 수준에 따른 물량은 조절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양쪽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았다. A의 입장에선 용역계약서에 나와 있는 대로 자신의 시간을 들여 번역을 했고 회의에 참석하였다. 당연히 약정된 금액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할만하다. 이사장의 입장에선 번역 수준이 다소 미흡하지만 이 일을 함께 시작하는 차원에서 가르치며 가겠다는 어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A에게는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을 주는 ‘갑’이 필요했을 것이다. 비록 이사장의 입장에선 신뢰관계를 기초로 이 일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겠지만 말이다.


청년들의 열정 페이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한다. 열정 페이란 말로 청년에 대한 노동착취 행위라는 말이다. 동의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하지만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일까? 경영학과를 나와 화사에 입사했다고 경영을 맡길 수 있을까? 전자공학과를 나왔다고 반도체를 설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기성세대로부터 배워야 한다. 요즘 기업들은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한다. 신입에 들어가는 돈은 3년 정도는 투자의 개념이다. 당장은 그들로부터 뚜렷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장차 써먹기 위해 가르치는 기간이다. 이제 기업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채용 후에 바로 써먹어야 한다. 그러니 경력직을 선호할 밖에.


A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젊을 때라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면 세상의 관계를 모두 갑을관계로만 보게 되면 자칫 귀한 인연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관계가 깔끔하고 좋긴 하다. 상대에 대해 크게 기대가 없는 관계로 군더더기가 없다. 진작에 알았다면 좀 더 마음 편안한 직장생활을 했을 텐데 싶다가도 그래도 정서적으로 섞여 그동안 울고 웃었던 수많은 인연들을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A의 관점을 불과 2년 전부터 가지게 되었는데 무엇이 좋다 나쁘다기보다는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섞어야 할 것 같다. 프리랜서 용역계약은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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