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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절대라는 말은 절대 없다

by 장용범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룩한 인물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부러워한다. 우리가 흔히들 듣는 얘기들은 “포기하지 마라, 너는 할 수 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고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세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퀴즈라는 프로에서 가수 장기하에게 인생을 정의해보라고 물으니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헤엄은 치지만 정작 자신은 파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되더라는 이유에서다. 자신의 노력이나 불굴의 의지만으로 일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이 되어가는 한 가지 요소일 뿐 세상의 일들은 그보다 더 다양한 것들에 의해 되어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내가 힘들게 노력한 만큼 나는 받을 수 있다는 착각. 그렇다.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 부른다. 나이 중년을 넘기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노력을 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일이 되어가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어느 인문학자의 이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힘들고 지친 자기 영혼을 보살필 줄 알아야 상처 입은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영웅은 몇 사람이면 족하고 모든 사람이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이나 스타를 향해 사진 찍고 손뼉 치는 사람들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했다고 달성을 못했다고 스스로를 질책하거나 비난하지는 말자. 이제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누가 아는가 새로운 기회가 인생의 좋은 전환점이 될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오직 한 길이라는 말들을 한다. 반 평생을 살면서 느낀 것은 그런 길은 없다이다. 어쩌다 그 길에 들어서서 여기까지 왔고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변함없는 것은 하나다. 인생은 유한하고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처음 아무런 연고 없는 서울 근무를 희망할 때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아니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 뭐’. 여기서 꼭 살아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으면 혼자 올라와 허구한 날 야근하고 컴컴한 뒷골목의 숙소로 향하는 하루하루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다 보니 주말만 되면 서울구경하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재미를 한껏 누렸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월요일 출근만 하면 동료들에게 지난 주말 서울시내 돌아다닌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해대니 하루는 옆의 동료가 “차장님, 서울에 놀러 왔어요?” 라며 핀잔을 줬다. 그때는 정말 놀러 온 기분이었는데 요즘엔 이 도시풍경도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인생은 무언가를 위해 그렇게 자신을 다그치며 살 만한 가치가 없어요. 인연이 닿으면 닿는 대로 하다가 아니면 말고 그래도 또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좀 가볍고 편하게 살아보아요.’ <법륜 스님>

‘군인 성향은 아닌 것 같은데 ROTC는 왜 했어요?’
‘아니, 굴삭기나 소형선박 면허는 뭐하러 땄어요? ‘
‘저 미니벨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어떻게 가게 되었어요? ‘
‘왜 하필 가야금을 배웠어요?’
‘남들 기피하는 영업 업무는 왜 그리 오래 했어요?’
‘금융부문에서 나름 잘하고 있는데 문창과는 왜 지원했어요?’.....
여기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답은 ‘어쩌다.’이다.

인생은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어쩌다’ 무언가를 하게 되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어쩌다’는 흥미로웠고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어쩌다’ 도 좀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려 한다. 다만, 나에겐 너무도 다양한 ‘어쩌다’가 펼쳐질 테니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나는 세상의 영웅이나 스타가 되길 바라지 않으니 절대 포기 못할 일은 절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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