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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방송의 위기 시대

by 장용범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를 처음 만들었을 때 이런 예상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모든 가정은 컴퓨터를 각 가정마다 한 대씩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예상은 이미 옛말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집에 PC나 노트북은 기본이고 태블릿에다 컴퓨터를 능가하는 스마트 폰을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시대이다.

얼마 전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방송국의 라디오 PD분을 만난 적이 있다. 방송국이라 하면 어쩐지 일반인들과는 달리 연예인들도 자주 접하고 베일에 싸인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때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방송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송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자신은 곧 정년을 맞는 세대이지만 최근 입사하는 신입 사원들을 보면 직장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하셨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TV를 보지 않는다는 건데 콘텐츠의 유통 채널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브이로그, 팟캐스트 등으로 바뀌고 있어 굳이 TV 앞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라디오는 좀 타격이 덜한데 이동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란다. 또한 방송국은 예산 중 상당 부분을 정부 보조로 받고 있어 공정성을 침해받을 여지가 있고, 사원들의 급여 체계도 최근 입사하는 직원들은 기존 사원들과 다른 임금체계인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어 신입 아나운서들은 주말에 개인 행사를 뛰는 실정이라며 이제 방송국 좋다는 말도 옛말이라고 하셨다.

공중파 방송의 위기상황이 방송국 사람들에게는 심각하게 다가왔음을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부터도 최근 TV를 안 보고 있었다. 거의 소비하는 콘텐츠는 스마트 폰의 유튜브를 즐겨 찾고 방송에서 만든 콘텐츠도 유튜브를 통해 소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공중파 방송국도 유튜브에 채널을 하나씩 만들어 TV 방송용과는 다른 콘텐츠를 제작하는 실정이다. SBS의 <문명 특급>, JTBC의 <워크맨>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것도 다른 고민이 엿보인다. 유튜브는 개인이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에 특화된 채널이다 보니 공중파는 내용에 제약이 따르지만 개인은 그런 제약 없이 영상을 마구 찍어 올릴 수 있다. 이를테면 개그우먼 박미선은 제작사가 있는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고 개인이 딸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나는 박미선>이라는 개인 브이로그 채널이 있다. 그런데 개인의 브이로그 채널이 제작사를 낀 유튜브 채널보다 더 많은 조회수를 보이고 있는데 더구나 그 개인 영상장비라는 것이 자신과 딸의 휴대폰이라고 한다. 이러한 달라진 콘텐츠 제작의 환경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첫째, 대중에 미치는 개인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겠다. 지금은 콘텐츠 유통 채널이 너무도 다양해서 개인적 이슈가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는 시간이 무척 빨라졌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개인이 영상, 편집 등의 몇 가지 기능 습득을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개인으로 올라설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둘째, 개인의 콘텐츠가 공중파 등 제작사를 낀 채널을 능가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콘텐츠 물량이나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개인용 영상은 휴대폰 하나로도 제작이 가능하기에 제작 비용면에서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개인을 이길 수 없다. 내용의 퀄리티가 다르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시청자가 결정할 문제지 그들이 주장할 내용은 아니다.
셋째, 표현의 자유가 넘쳐나 통제를 벗어서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가짜 뉴스 엄단 등의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유튜브 등의 서버는 국내에 있지도 않으니 그것을 어떻게 원천적으로 제재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코로나로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강요받았다.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했고 그중에는 개인이 제작한 콘텐츠도 상당했을 것이다. 개인이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그것을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도록 올리는 시대, 글을 쓰고 그것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그 나라 사이트에 올릴 수 있는 시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과 채팅을 하는데 나는 모국어로 이야기 하지만 저쪽에는 그 나라 언어로 표시되는 시대 이 모든 것이 내 휴대폰으로 구현 가능한 시대가 지금의 시대이다.

현대는 개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금 나에게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이것으로 정말 많은 것을 할 수도 있지만 정작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깥세상이 요란할수록 조용한 내면의 가치를 지키는 게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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