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 태어나 줘서 고마워

by 장용범

코로나 이후 첫 영화관 나들이였다. 퇴근 후 매표소 앞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하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영화는 최근 송강호 배우가 칸 국제영화제서 주연상을 받았던 ‘브로커’라는 영화였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잔잔해서 좋았다. 나이 탓인지 요즘은 극적인 클라이막스로 몰아가는 영화 스토리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폭력적인 액션이나 감정을 많이 소모하는 영화를 회피하게 된다. 영화 스토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의 구매자를 찾아 넘기려는 브로커와 아기 엄마의 기묘한 동행과 그를 쫓는 두 여자 형사의 이야기이다.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모습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사람이 그 분야의 최고 승자라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웬만한 건 다 돈으로 환산이 된다. 사람은 어떨까? 부정하고 싶지만 몸값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쓰이는 걸 보면 역시 돈으로 환산된다고 봐야 한다. 이 영화에는 돈으로 환산하기 불편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아이의 엄마는 성매매 여성이다. 그녀가 나은 아이는 400만 원의 12개월 할부에서 4,000만 원 일시불로 지급하려는 다양한 거래선을 만나게 된다. 아기를 빼앗아 오기 위한 건달들도 돈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마이클 샌덜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을 읽다가 오히려 제목과는 반대로 세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드물다는 걸 알았다. 종교라 하면 인간의 세속성을 정화하는 최후의 보루라 여겨지는데 이마저도 절이나 교회 전문 매매 사이트가 있는 걸 보고는 흥미로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인간의 내면은 공허하고 허무해진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니 분명 돈이 필요한 것은 맞는데 그리고 돈이란 많을수록 좋은 것도 맞는데 왜 마음은 허전해지는 것일까. 내 몸의 신장이나 간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세상이고, 같은 병의 치료를 받지만 돈을 더 지불하면 더 좋은 병실에서 병을 더 잘 고치는 의사의 특진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사우나에서 벌거벗은 몸의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시간당 10만 원의 노동을 하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최저 시급 수준인 1만 원을 받는 사람이다. 아, 이건 아닌가 보다. 시간당 10만 원 하는 노동자는 호텔 사우나를 찾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영화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이랬다.

세상이 아무리 돈으로 돌아가는 차가운 세상이라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태어나 줘서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지금 나를 태어나 줘서 고마운 사람으로 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든든한 인생의 후원자를 가진 셈이다.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존재 그 자체로 감사한 대상이다. 하지만 이는 내 마음이 그리 가치를 메기는 것이니 결국 돈으로 살 수 있다 없다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돈을 받고도 팔지 않을 것들이 많다면 적어도 허무한 삶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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